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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일간 유라시아 여행 다녀온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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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노윤화 대학생 기자) 여행은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다. 많은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여행을 가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직접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벌어 107일간 유라시아 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정혜슬(가명·22) 씨가 있다.

정 씨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가면 1년 휴학해서 한 학기는 돈 벌고 한 학기는 여행을 가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그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던 정 씨는 지난해 2학기(6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휴학을 결심했다.

지금 이렇게 꿈을 미루면 나중에는 더 가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미 수강신청까지 다 마친 상태였지만 과감하게 휴학했다. 마침 집 근처에서 적절한 아르바이트를 찾게 된 것도 정 씨의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가 됐다.

5학기를 마친 후 여름방학에 어머니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과 파리, 마드리드 등을 여행한 경험도 결정에 도움이 됐다. 북쪽 길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긴 여행도 혼자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주 5일 동안 하루 7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여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열심히 일했다.

여행 경로는 가장 가고 싶던 곳인 러시아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그리고 스페인의 북쪽 길을 중심으로 짜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러시아 지도를 보면서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서쪽 끝인 모스크바까지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꼭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러시아는 물가도 생각보다 저렴해 오래 머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꼭 가고 싶었던 여행지와 친구들이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스웨덴과 독일까지 추가해 경로를 짜다보니 ‘러시아-에스토니아-스웨덴-헝가리-슬로베니아-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스페인’ 순으로 여행을 하게 됐다.

가족, 친구 등 주변에서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이 정 씨의 오랜 꿈이었단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말리지는 않았다. 지난 3월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 정 씨는 3월 28일 드디어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이 처음부터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인데도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는 4일 간 심란한 마음이 앞섰다. 막상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앞으로 3개월을 혼자 다닐 생각에 막막했다는 정 씨.

그런 마음도 잠시, 러시아에서 조용히 자연을 느끼면서 자연에 위로받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다음 행선지였던 하바롭스크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한적하고 평화로운 강가를 거닐고 있으면 자연에게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에는 이르쿠츠크로 이동해서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한 숙소에서 3박을 머물렀다. 숙소에서 나올 때마다 호수를 볼 수 있었고, 호수는 정 씨에게 매번 감동을 주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는 산 위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호수를 바라보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얼굴을 타고 쭉 흘렀다.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라 흐르는 눈물이었어요.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고,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도 아니었어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죠. 사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순간이라는 거죠.”

러시아에서의 한 달이 지나고, 북유럽과 동유럽, 서유럽을 지나 정 씨는 산티아고 북쪽 길에 도착했다. 매일 험준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야 하니 발바닥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지만, 북쪽 길은 고생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는 했다. 정 씨는 그러한 아름다운 자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순례길이 이상한 중독성이 있어요. 매일 걷고 먹고 자고 빨래하는 식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생활도 마음에 들고요(웃음). 어려운 길을 함께 걸으면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서로를 응원했던 것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떠났던 여행이기도 했다. 정 씨는 낯선 곳에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인식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느꼈다. 또한 여행을 통해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면 사람은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는 이제 성인이고, 몸도 건강한 편이라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는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러시아나 산티아고 북쪽 길처럼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 갔을 때, 항상 번역기를 이용해서 대화를 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많았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는 입장이 돼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좀 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예전에는 의무감에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마음에서 우러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1년이나 휴학하면서 한 학기는 돈을 벌고, 한 학기는 여행을 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의 시선으로 보면 생산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막상 휴학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남들보다 1년 늦어진다는 생각에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 씨는 이번 여행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던 일이고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공부도 정말 중요하지만,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꼭 하고 싶은 일인데 주변 분위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 씨는 중학교 때부터 간직해왔던 큰 꿈 하나를 이루었기에 앞으로도 새로운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해서 취직하면 이번처럼 긴 여행을 가는 건 힘들 것 같아요. 그럼에도 새로운 꿈은 다시 꿀 거에요.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꿨던 꿈을 빨리 이룬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도 그 꿈이 막연해 보여도 일단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려고요. 이제 남미에 가야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웃음)” (끝) /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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