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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앰버서더`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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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제가 원래 고민은 짧게 하고, 한 번 결정하면 뒤도 안돌아보는 성격이거든요.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누구나 후회는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배우는 게 있으니까요.”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glenfiddich)의 마케팅 담당인 박세미(33) 씨의 인생은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다. 대학 때 음악을 전공한 그녀는 현재 전공과는 무관한 위스키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음악이 아닌 마케팅을 선택한 박 씨에게 직업에 관한 물음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면접에선 늘 ‘왜 음악을 계속 하지 않고 마케팅을 선택했냐’는 질문이 따라와요. 그러면 전 음악과 마케팅 그리고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답하죠.(웃음)”

남자들의 첫사랑 글렌피딕의 꽃 ‘앰버서더(Ambassador)’

2012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세미 씨는 광고대행사, 수입 주류 브랜드를 거쳐 지난해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의 마케팅 담당으로 이직했다. 위스키 브랜드를 담당한 지 고작 1년 밖에 안됐지만 박 씨의 업무스킬은 업계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을 찾아다니는 그녀를 보면 자칫 워커홀릭(workaholic)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 박 씨는 욜로(YOLO)에 가깝다.

“별명이 ‘욜로 팍’이에요.(웃음) 제 업무가 마케팅 기획이라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소위 핫한 장소도 많이 가는 편이거든요. 주변에선 그런 저를 부러워하죠. 사실 일하면서 사심을 채우는 것도 없진 않아요.(웃음)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기대돼죠.”

일반적으로 남성이 주류인 위스키 브랜드 앰버서더 사이에서 홍일점으로 활약 중인 박 씨의 적응기는 쉽지 않았다. 글렌피딕 글로벌 앰버서더는 27명, 그 중 여성은 한국과 미국, 캐나다에 단 3명뿐이다. 그 중 박 씨도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주류인 위스키 브랜드 앰버서더 사이에 몇 안 되는 여성 담당자로서 활약 중인 박 씨의 적응기 역시 간단치 않았다.

“입사하고 나니 인수인계 해 줄 사수가 없었어요. 앰버서더라는 직책은 행사 기획부터 진행까지 맡아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그래서 스피치 학원을 알아보고, 주변에 강사 분들께 조언도 구하고, 내내 거울 앞에서 연습 했어요. 입사 한 달 만에 첫 행사에 투입됐는데 잘한다고 칭찬 받았죠.(웃음)”

박 씨가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더불어 독특한 사내 분위기에 있다. 딱딱한 주류 업계의 전통적 분위기가 아닌 글렌피딕만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는 셈이다.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로우면서 개인적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나 업무는 모두 해볼 수 있는 분위기죠. 마치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랄까.(웃음) 주류 업계 특히 위스키 브랜드에선 아마 유일할걸요.”

영화음악감독을 꿈꾼 악바리 욜로, 좌절에서 새로운 길 찾다

박 씨는 다섯 살 때부터 친 피아노 경험을 살려 2005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 작곡 전공으로 입학했다. 1년 후 네덜란드 유학을 준비했던 그녀는 한 차례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문제는 영어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곧 잘 해서 당연히 붙을 줄 알았어요. 제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 한 거죠. 실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들의 질문을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어요. 당연히 불합격이었죠.”

이전까지 실패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박 씨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충격으로 포기할 만도 했지만 박 씨는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 온 그녀에게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6개월간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열심히 놀았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레 영어 실력도 늘더라고요. 첫 면접 때만 해도 면접관의 ‘hello' 외에는 듣지 못했는데, 두 번째 면접에서는 가뿐히 통과했어요. 면접관도 어떻게 6개월 만에 영어 실력이 늘었냐고 놀라는 눈치였죠.(웃음)”

우여곡절 끝에 네덜란드 로테르담 콘서바토리에 입학한 박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꿈을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주입식 위주였던 국내 교육이 또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인터내셔널 스쿨이라 유학생과 네덜란드 현지 학생이 반반이었는데, 현지학생이나 다른 나라의 유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유롭게 즐겼다면 전 주입식 교육으로 음악을 즐기지 못했어요. 한국에 있을 땐 몰랐는데 외국인들과 같이 공부를 해보니 그 한계가 드러나더라고요. 3학년 즈음 되니 도저히 그들을 못 따라갈 것 같아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어요.”

박 씨는 네덜란드에서 전공인 작곡뿐만 아니라 음악PR, 저작권법, 공연 기획 등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함께 배웠다. 수업과 연계해 전공자들을 모아 공연 기획을 맡기도 했다. 그 덕분에 새로운 진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하고 나서 새로운 진로에 대해 많이 알아봤어요.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니까 고민도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수업의 일환으로 전공자들을 모아 공연 기획한 일이 있었는데,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래서 기획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2012년 여름, 한국으로 귀국한 박 씨는 곧바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취업 스터디부터 영어회화, 자격증 등 기본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음악 전공자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했다. 그해 12월, 공연기획사에 입사한 박 씨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라이선스 공연을 국내에 들여오는 업무였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월급도 박봉이었고, 별다른 기획이랄 게 없었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어요. 이후 주류 업계로 이직한 뒤 지금 이 곳으로 옮겼죠. 주류업계 특성상 일은 많지만 하루하루가 재미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제가 기획한 일을 추진하는 것도요. 욜로와 딱 맞는 직업이죠.(웃음)”

#서른셋 #욜로 #소개팅 전문가

박세미 씨에게 사회생활에 비해 능숙한 말솜씨와 여유의 비결을 물었더니 단번에 ‘소개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른 이후 50번의 소개팅을 했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녀의 이상형이 궁금해졌다.

“소개팅 정말 많이 했어요, 하루에 점심, 저녁 두 번을 한 적도 있으니까요.(웃음) 전 남자와 직업을 고를 때 딱 세 가지만 봐요. 재미·거리·사람이요.(웃음) 재미있고, 가깝고, 사람이 좋아야 해요. 소개팅 덕분에 행사를 진행할 때도 떨지 않는 것 같아요. 전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내일 목숨이 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제 목표예요.(웃음)”

브랜드 앰버서더란?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세일즈 마케팅 전문가로 브랜드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상품을 판매·홍보하는 직업이다. (끝) /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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