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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정치 리더가 된 메르켈의 자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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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BP) 앙겔라 메르켈, 그녀에겐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05년 총리에 선출된 메르켈은 집권 12년째를 맞았지만 소박한 옷차림, ‘메르켈리즘’이라 불리는 포용적인 정책 등으로 여전히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자국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그녀는 막강한 영향력을 떨쳐왔다. 2010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EU에서의 맹주 역할을 담당하며 우크라이나 분쟁 중재부터 약 100만 명의 난민 수용 등 그 특유의 신중함과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해 난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해온 것이다.

이 전기는 그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정치인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저자 매슈 크보트럽은 지금껏 영어권에서 인용되지 않았던 독일어 자료와 기록보관서 서류까지 검토하며 자료들을 수집해 메르켈의 개인적 이야기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엮어냈다. 특히 메르켈 특유의 성격과 비전을 참신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와 또 그녀의 여성 참모들이 어떻게 보수적인 남성 정치인들을 압도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에 입문해 독일 총리가 되기까지

2015년 10월 말 EU 지도자들이 브뤼셀에 모였다. 회의 안건은 단 하나, 바로 난민 위기였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리아 내전과 IS 공포를 피해 도망쳐왔다. 절박한 이 난민들을 비교적 환대한 국가는 독일과 스웨덴뿐이었다. 메르켈이 난민 포용 정책을 펼친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장벽 너머에서’의 삶, 즉 오랜 분단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회주의 형제국’의 언어인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해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 전도유망한 학생은 이후 대학에선 동독 체제라 할지라도 물리학 법칙은 억압할 수 없다라는 이유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 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989년 11월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후의 삶은 역사가 되었다. 민주개혁당에 자원한 그녀는 불과 몇 주 만에 당 대변인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 년도 되기 전에 정치에 관심 없던 이 물리학자는 독일 내각 최연소 장관이 된다.

메르켈은 언론계 인맥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당시 기민련 사무총장이었던 메르켈은 정치 입문 시기부터 알고 지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기자 카를 펠트마이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정당의 불법 기부금에 관련된 인터뷰에 관심 있느냐고 물었다. 독일 연방 공화국 역사상 어떤 정치인이 쓴 칼럼도 메르켈이 1,017자로 조목조목 정계의 악습을 지적한 그 글보다 큰 충격을 야기한 것은 없었다. 그녀가 보낸 글은 불법 기부금과 관련해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간접적으로는 그의 후계자 쇼이블레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콜 총리가 누구인가? 메르켈을 직접 발탁해 독일 정치계의 중심부에 꽂아준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각별한 관계의 전 총리를 무너뜨리고 그의 후계자의 당수 생명을 끝내버린 것이다.

일찍이 메르켈은 한 인터뷰에서 “게임의 법칙을 고수하지 않는 사람만이 승리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콜은 그녀의 정치 역량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그녀를 무시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평소 사람들 앞에서 울기도 할 정도로 소심한 이미지의, 단지 내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동독 출신 여성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메르켈이 그런 냉정한 단호함을 지니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메르켈은 명확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단호한 실용주의, 특히 시간을 들여 신중히 생각하는 능력에서 보다 빛을 발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그녀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신중히 심사숙고하고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결과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2002년 당내 대부분이 그녀의 총리직 입후보에 반대하자 그녀는 물러나 바이에른 주지사 슈토이버에게 기민련/기사련 후보를 양보했다. 총선 이후 그녀에게 원내대표를 맡긴다는 조건에서였다. 슈토이버가 패배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약속을 지키게 했고 정계 입문이 그랬듯 그렇게 갑자기 당수와 원내대표를 겸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 경쟁자 메르츠를 압도해 명실상부한 다음 선거의 후보가 되었다. 이는 바로 그녀를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만든 선거였다.

세계적 지도자가 되기까지

2015년 그녀는 도전자가 없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여제였고 그때까지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EU를 이끌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성공적인 협상을 끌어냈으며, 1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포용 정책을 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타임>지는 그해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당시 독일 사민당의 슈타인브뤼크는 메르켈의 완벽함에 대해 난공불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에 대해 자주 등장한 표현은 바로 ‘alternativlos’, 즉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난민 위기와 더불어 바뀌었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그녀의 후계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많은 난민들을 수용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지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 경제를 튼튼하게 하고 연금을 지불할 원천을 확장함으로써 복지국가를 보존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쨌든 난민 위기는 메르켈이 실용주의를 버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실용주의자답게 그녀는 정치 현실이 가혹해지면 기꺼이 이상을 버릴 것이다.

그녀는 이상만큼이나 현실주의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가을 그녀는 이민 정책의 변화를 선언하며 이러한 모습을 보여줬다. 메르켈은 “궁극적 목적이라는 윤리와 책임감은 대비가 아닌 보완되는 개념이다”라는 베버의 말을 고스란히 구현한 인물이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 앙겔라는 위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울곤 했던 소심한 이 여성은 타고난 웅변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기억에 남는 명연설은 거의 없다. 난민 위기 때 반복되었던 진언만이 두드러진 예외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동독에서 자라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때로 성대모사를 즐긴다는 등의 이야기는 쉬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비롯해 이 최신 전기는 이전에 영어권 국가에서 출판된 간략한 메르켈 전기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저자 매슈 크보트럽은 현재도 한창 굵직한 역사를 쓰고 있는 메르켈이란 인물의 삶과 쉽지 않은 정치 인생의 결정적 에피소드를 정교하게 구성해 우리에게 흥미로우며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