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는 2008년 ‘아이오페’ 쿠션을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는데요. 쿠션 팩트는 ‘쿠션’이라 불리는 이 우레판 폼에 액체 타입의 파운데이션을 흡수시켜 도장을 찍듯이 퍼프로 찍어바를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파운데이션이 손에 묻을 필요가 없고 간편해 인기를 끌었죠. ‘미투’ 제품이 너도나도 나오자 아모레는 2011년 ‘화장료 조성물이 함침된 발포 우레탄폼을 포함하는 화장품(쿠션)’이라는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쿠션 팩트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었던 회사들은 ‘멘붕’에 빠졌죠. 이중 하나였던 LG생활건강은 2013년 5월 아모레의 쿠션이 특허로서 효력이 없다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LG생건은 아모레와 특허 교환 합의를 맺고 소송을 종결했는데요. LG생건이 보유한 치아미백패치 특허를 아모레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쿠션 제조를 허락 받은 겁니다.
두 회사의 소송이 종결되자 불똥은 코스맥스로 튀었습니다. 코스맥스는 로레알그룹으로부터 랑콤, 입생로랑, 나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쿠션 팩트를 생산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태였죠. 코스맥스의 고객사였던 아모레는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코스맥스는 로레알과 계약을 맺는데요. 이 때문에 아모레는 코스맥스에 맡겼던 위탁생산물량을 다른 회사로 넘기고 코스맥스와 거래를 끊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쿠션 팩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코스맥스가 아모레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코스맥스는 2015년 10월 투쿨포스쿨,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에프앤코, 에이블씨앤씨 등 6개 회사와 아모레를 대상으로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아모레도 코스맥스가 제조한 쿠션 팩트 제품 2개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2016년 10월 1심에서는 코스맥스가 패소하면서 판세는 아모레로 기울었죠. 코스맥스는 쿠션 팩트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제조설비 및 생산제품을 전량 폐기해야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재판부는 4개월 만에 아모레 쿠션의 신규성과 진보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최종적으로 코스맥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코스맥스는 특허 소송을 위해 수차례 자체 실험을 하고 국가공인 시험기관에 의뢰해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분 분석 전문가들과 학계 권위자들을 만나 의견을 받기도 했는데요. 에테르를 사용한 아모레 쿠션과 에스테르 기반의 쿠션으로 내구성을 비교하고 성분 비율에 따라 기능에 차이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에스테르와 에테르의 물질 특성에는 큰 차이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에테르로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실험을 통해 아모레의 기술이 특허 가치가 없다는 걸 입증한 겁니다.
일각에서는 아모레의 특허권 상실로 다른 화장품 회사로부터 특허료 반환 소송이나 라이센스 계약 해지 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모레는 디올, LVMH,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등에 특허 사용료를 받고 있는데요. 법조계는 화장품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허 무효로 판결이 났지만 소송 결과가 나오기 이전 아모레에 지불했던 로열티는 되돌려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쿠션 제조 기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특허를 한꺼번에 묶어 라이센스 계약을 맺는 관행상 한가지 특허가 무효됐다고 해서 계약 해지 사태로 커지긴 어렵다고 합니다.
코스맥스는 생사를 건 쿠션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기뻐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고객사인 아모레와 관계 회복이 우선이기 때문이죠. 코스맥스는 “아모레 측과 함께 윈윈하겠다”는 입장 만을 발표했습니다. (끝) /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