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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휴게소에 초등생 두고 갔다'며 벌금형 받은 교사의 판결문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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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지식사회부 기자)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중 배가 아픈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에게 버스에서 용변을 보게 한 뒤 휴게소에 혼자 남겨두고 떠난 혐의로 벌금형(800만원)을 선고 받은 초등교사 사건을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대구지방법원 형사10단독 김부한 부장판사는 대구의 초등교사 A씨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한국교직원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는 법원의 결정이 너무 지나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휴게소 방치 교사 사건을 재심해 달라’는 청원 글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타지의 휴게소에 아이만 혼자 두고 온 것은 교사의 분명한 과실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가 ‘선의의 피해자’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여러 군데 확인된다는 이유에서다. 판결문 내용에 따라 당시 상황을 시간 순으로 재구성해 살펴봤다.

지난해 5월 현장 체험학습을 위해 대구에서 단체 버스를 타고 천안으로 향하던 중 B양이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휴게소가 멀고 버스를 갓길에 세울 수 없다는 이유로 50대 남성 교사인 A씨는 B양에게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게 했다. 김 부장판사는 “같은 반 남녀 학생들이 모두 타고 있는 버스 뒷자석에 비닐을 깔고 용변을 보게 한 뒤 스스로 뒷처리를 하게 했다”며 “피해자로서는 당황스럽고 수치심을 느끼는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반 남학생들로부터 냄새가 난다는 놀림을 받고 B양은 약 10분 뒤 도착한 휴게소 화장실에서 울면서 나오지 않았다.

A씨는 학생들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듣고도 B양의 보호자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상황을 알게 된 B양의 어머니가 먼저 ‘데리러 가겠다’는 전화를 했지만 A씨는 B양에게 “여기서 안 가면 더 이상하게 볼 거다, 가야 된다”며 함께 갈 것을 종용했다.

이후 A씨는 휴게소에서 피해자를 버스에 태운 채 그대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B양의 어머니로부터 ‘B양이 원하는대로 하고 싶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고 망설이는 B양에게 “내릴 거야 말거야, 다른 아이들이 너 때문에 피해를 보잖아”라고 다그치며 결정을 강요했다. 이에 당황한 피해자가 내리겠다고 말하자 30~40m 출발했던 버스를 정차시키고 B양을 혼자 내리게 했다.

당시 같은 버스에 탑승해 학생들을 함께 인솔하고 있던 보조교사 C씨도 있었지만 버스는 B양을 혼자 덩그러니 남겨 두고 출발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A씨)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피해자(B양)가 수치심을 느끼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성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약 한시간 동안 피해자를 방임했다”고 판단했다.

대구교육청의 ‘현장체험학습 운영매뉴얼’과 해당 학교의 현장체험학습 안전교육에 따르면 담임 교사는 응급상황 발생 시 보호자에게 상세히 연락하고, 응급상황을 학교장 등 관리자에게 신속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전교조가 이번 판결에 대해 발표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쓴 교사의 조치에 대해 해직으로 답한다면 교사들의 일상은 살얼음 걷기가 될 것”이라는 성명에 대해 동의 여부가 엇갈리는 배경이다.

법원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A씨는 아동복지법에 따라 학교 등 교육기관에 10년동안 취업할 수 없다. 사건 초기부터 A씨를 법률적으로 지원한 교총에 따르면 A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 항소 여부가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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