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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마데우스‘와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적도 감화시키는 예술의 힘 잘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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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훈 문화부 기자) 좋은 예술작품에는 꽉 짜여진 논리 같은 합리적 사고가 흉내낼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이죠. 훌륭한 예술작품이든 마음씨나 용모가 빼어난 사람이든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성격이 까칠한 사람도 그 대상 앞에서는 마음을 누그러뜨립니다. 그것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대하죠. 아름다움에 감화되는 겁니다. 논리는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지만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합니다.

이런 ‘예술의 힘’을 잘 보여주는 무대공연 두 편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연극 ‘아마데우스’, 다른 하나는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아마데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에드거 앨런 포는 미국 문인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를 다룬 작품입니다. 아마데우스는 지난달 27일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했으며 다음달 29일까지 계속됩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지난해 11월17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같은 극장에서 공연하고 막을 내렸는데 머지 않은 기간 내에 다시 공연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공연에는 각각 모차르트와 포의 예술적 라이벌이 나옵니다.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가, 에드거 앨런 포에는 포의 라이벌 그리스월드가 나옵니다. 이들은 주인공의 예술적 능력을 시기해 주인공을 미워합니다. 그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죠. 하지만 그런 라이벌들도 주인공이 만든 작품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그리스월드는 포의 시를 읽고 감동합니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처음 들은 장면입니다. 살리에리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그 음악은 나를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중략) 이게 뭐죠? 신이시여, 말씀해주세요. 이 고통은 대체 무엇입니까? 절대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영혼을 채워주는 이 음악. 이게 바로 당신의 목소리 인가요? 하늘에서는 별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나는 마치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모차르트의 아내를 유혹합니다. 그는 아내를 시켜 모차르트의 악보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 악보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죠. “이 고통스러운 환희. 그 세레나데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어요. 나는 단순히 잉크로 그려진 악보 따위가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공허한 내 음악에 수치심을 느꼈다”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모차르트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인정하기 싫었겠지만요.

에드거 앨런 포를 볼까요. 그의 문학적 라이벌 그리스월드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작 시 발표회를 하는 장면입니다. 갑자기 포가 나타납니다. 청중의 관심이 포에게 쏠립니다. 그들은 그리스월드를 제쳐놓고 포에게 시를 먼저 낭송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월드로서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죠. 결국 그리스월드는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포가 먼저 시를 낭송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포가 신작 시 ‘까마귀’를 낭송합니다. 사람들은 환희와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스월드 또한 포의 시에 감동합니다.

그리스월드는 사람들이 아직 낭송회장에 남아있을 때는 자신이 감동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청중이 떠나고 난 뒤 그는 포에 대한 열등감을 표현한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를 부릅니다. “무엇 인가 이 굴욕감은 / 그의 시가 나를 떨게 해 / 감춰있던 내 욕망을 / 눈 뜨게 해 인정할 수 없어 / (중략) / 신이시여 날 도우소서 / 그는 분명 선택 받은 자 / 그의 재능은 악마가 준 것 / 나의 신이여 날 버리시나”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말입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고귀한 정신이 뭔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술작품은 사실 인간 정신의 표현인데, 예술이 자기 스스로를 ‘전문화된 직업 예술가’의 틀 속으로 몰아넣다보니 사람들이 예술을 멀게 느끼게 된 건 아닐까요. 예술의 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끝)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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