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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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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캠포스 잡앤조이 기자 / 이태권 대학생 기자) 여기 조금은 특별한 정치모임이 있다. 매주 일요일, 아담한 공간의 독립서점에서 평범한 직장인, 아파트 동대표 등 우리 주변의 이웃들, 일반 시민들이 모여 구의원 출마를 공부하고 선거 전략을 논의한다. 기존 정당 소속도 아니다. 선거라고는 투표밖에 모르던 이들이 모여 오는 6월 지방선거의 구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바로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이하 ‘구프’)는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의 사장 김종현(35)씨가 “선거에서 투표만 하고 말 게 아니라 아예 직접 한번 출마를 해보는 건 어떨까?”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지난해 9월 설명회를 열어 구의원 출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반응이 괜찮아 1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SNS를 통해 ‘구프’를 알게 되어 찾아온 사람들은 매주 일요일 ‘퇴근길 책 한잔’에서 모여 구의원 출마와 관련한 절차와 선거법, 선거전략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한다. 기성정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만큼 개인이 혼자 준비하기 쉽지 않은 출마 과정을 함께 모여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출마를 결심한 이들은 약 10여 명이다. 대부분 기성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저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정치계에 처음 뛰어드는 ‘정치 초년생’들이지만 기성 정당정치와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만큼은 뚜렷했다.

‘구프’를 통해 마포(나) 지역구에 출마하는 차윤주(35)씨는 “지금의 기초의원 제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역 유지, 토호 등 특정 계층만 대변되고 있는 것 같아 이를 바꾸고 싶었다.”며 “평범한 시민들이 출마를 통해 제도권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을 주관하는 서점 ‘퇴근길 책 한잔’의 사장 김종현씨도 영등포(라) 지역구에 출마한다. 그도 “구 예산이 5000억 원에 달하는데도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삶과 밀접한 동네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나”며 “SNS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투표하는 정도로만 그칠 게 아니라 스스로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일반 시민들 대부분은 자신의 거주지 구의원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관심이 없으니 낮은 투표율은 물론 기성정당에 밀려 출마 자체를 포기하는 군소후보들도 숱하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의 2인 선거구 11곳에서 무투표로 당선된 사람들이 22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의원은 행정조례를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 의결 하는 등 지방자치의 의결사항을 총괄한다. 생각 이상으로 우리 생활 일반과 밀접한 정책들을 다루며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의원 입후보 자격 요건은 어떨까. 우리나라 선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방선거 출마 조건은 출마하는 지역구에서 60일 이상 거주한 만 25세 이상의 주민이다. 여기에 기탁금 200만 원과 무소속 후보일 경우 지역 내 거주자 50인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김씨는 “국회나 시, 도 선거는 진입하기 어렵지만 가장 작은 단위의 지방 선거인 구의원 선거에서는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의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은 셈”이라며 “구의원 평균 연봉이 5천만 원인데다 겸직까지 가능하니 술값을 아껴 출마할 만하다(웃음)”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초의원 선거를 일반 개인이 혈혈단신으로 혼자 치르기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선거캠프 운영과 전략 수립 등을 혼자 준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프’ 모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구의원 출마에 도전하는 청년들을 돕고자 하는 손길들이 이어졌다. 정치소셜벤처기업 ‘폴리시브릿지’, 정치 스타트업 ‘칠리펀트’ 등에서 구의원 선거와 출마에 대한 강연을 맡았고, 얼마 전에는 김영배 현직 성북구청장이 자리해 지방의회에 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구프’ 출마자들은 모두 기성 정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기성 정당의 공천에 의존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혁신을 일으켜보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우리의 이웃들,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정치 현장으로 뛰어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인 셈이다.

이들의 선거 전략은 ‘무투표층’의 공략이다. 기초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낮으니 투표율 자체를 끌어올려 전체 파이를 키우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무투표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어차피 기존에 구의원 선거에 투표하는 이들은 늘 찍는 후보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구프’ 출마자들은 기성 정치에 실망하고 투표를 포기해버리는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들은 부족한 선거자금과 지역 인맥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그룹 기능과 지역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젊은 층들을 공략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 구의원 선거 출마자들이 일일이 시장과 인구 밀집 지역 등 지역구 내 오프라인 유세에 집중했다면 ‘구프’는 SNS를 매개로 한 유권자들과의 온라인 소통으로 무투표층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차별점이다.

김씨는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직접 출마해보면 투표만 하는 것과는 그 이해도와 관심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선거가 ‘내 일’이 되기 때문”이라며 “꼭 당선이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우리를 보며 ‘나도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라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프’ 모임은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꼭 출마하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정치에 관심 있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라면 모임은 누구에게든 열려있다. 6·13 지방선거까지는 앞으로 남은 시간은 4개월 남짓이다. 동네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자 하는 이들의 도전은 어느덧 풀린 날씨와 함께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끝) /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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