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10% 매입
다임러는 지난 23일 독일증권거래소에 리 회장이 지분 9.69%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지리차는 작년 11월 다임러 측에 전기자동차 기술 등을 제휴하기 위해 지분 5%(신주)를 사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다임러가 이미 중국 비야디, 베이징기차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서다. 다만 다임러는 증시에서 주식을 사는 데는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리 회장은 약 90억달러를 투입해 독일 증시에서 지분을 사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분 매입액은 중국 자동차업계의 해외 자동차기업 지분 매입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경영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기준 리 회장의 자산이 165억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지분율은 기존 최대주주인 쿠웨이트국부펀드 지분(6.8%)보다 많다. 리 회장 측은 일단 추가 매입은 없다고 밝혔다. 리 회장은 “자동차회사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외부 기업과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며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공유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테슬라나 우버, 구글 등에 맞서기 위해 제휴를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리차는 2010년 볼보를 인수해 기술력을 높인 것처럼 지분투자를 통해 다임러의 전기차 기술을 이전받으려는 속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다임러는 세계 자동차회사 중 두 번째로 많은 연구개발(R&D)비를 쓰고 있다”며 “일본에서 마쓰다와 스즈키가 도요타자동차와 협력해 적은 비용으로 기술을 얻는 것처럼 지리차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임러 측은 “다임러의 혁신과 전략, 미래를 확신하는 장기적인 투자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 증권사 번스타인의 막스 워버튼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유럽 자동차 기술과 브랜드 및 이익에 직접적인 접근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자본 경계하는 독일
BMW, 폭스바겐과 함께 독일 3대 명차로 꼽히는 다임러는 유일하게 오너가족 지분이 없는 회사다. 독일 경제부는 로이터통신에 “기업 인수 등에는 지켜야 할 법적 조항들이 있다”며 “투자자가 이를 지키고 확인하는 것은 의무”라고 밝혔다.
마티아스 마흐니히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유럽연합(EU) 통상장관들이 다음주 만나 원하지 않는 투자자로부터 중요한 유럽 기업을 지키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다임러 투자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독일 내에선 중국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정부는 항공기 부품회사 코테자에 대한 중국 기업의 인수 시도를 보류시켰다. 산업용 로봇기업 쿠카가 2016년 중국 메이디에 넘어가고 지난해 조명업체 오스람이 중국 컨소시엄에 팔린 뒤 기술 유출 및 감원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은 2016년에만 독일 기업 68개에 투자했다.
지리차는 “이번주 초 다임러 경영진을 만나기 위해 슈투트가르트로 갈 계획”이라며 “베를린의 독일 정부 고위관리들과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진격하는 지리차
지리차는 중국 자동차 굴기의 선봉장을 맡은 업체다.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업체 프로톤홀딩스의 지분 49.9%를 인수하고, 프로톤이 보유하던 영국 로터스 지분 51%도 매입했다. 지난해 7월엔 ‘하늘을 나는 자동차(플라잉카)’를 개발 중인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테라푸지아도 사들였다. 이어 12월 스웨덴 볼보상용차의 최대주주가 됐다.
1986년 중국 저장성 황옌에서 냉장고사업을 시작한 리 회장은 1997년 국유기업 지리차를 인수해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내에서도 후발기업이던 지리차가 급성장한 건 2010년 미국 포드자동차에서 볼보 승용차사업을 인수하면서다. 볼보는 회생했고, 지리차의 기술력도 높아졌다.
지리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124만 대를 판매해 처음 100만 대를 넘어섰다. 상하이GM 등 합작사를 제외한 토종 업체 중 1위에 올랐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주식 가격도 지난 1년간 두 배 이상 오르면서 리 회장은 작년 말 중국 10대 부자에 진입했다.
뉴욕=김현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