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은 동양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도 않다. 필자는 공자 당시의 복잡한 규율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한다. 그러나 공자께서 70을 두고 말하기를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해도 이제는 법도에 어긋남이 없게 되었다(종심:從心)』고 할 때의 「법도」라는 것이 아마도 복잡한 계율이 아니었을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있다. 소녀경 같은 것을 보아도 얼마나 지켜야 할 계율이 많은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고 우리나라의 중세 양반가에서 지켰던 복잡한 계율들은 역시 절간에서 공부하는 승가의 계율 못지 않을 것이다.
성에 관련된 계율 등 역시 시대와 종교에 따라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대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교세를 모으고 있는 종교의 하나는 결혼과 성교에 대해 교리에 따라 재구성된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놓고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첫날밤에는 반드시 남성상위로 성교를 해야 한다든가 며칠이 지나서는(아마도 사흘째) 또 반드시 여성상위로 성교를 해 여성권리의 회복을 스스로 상징해야 한다든가 하는 복잡하고도 얼른 들으면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교리를 갖고 있다. 사실 이런 것들까지 교리라고 할 수는 없고 신자들이 지켜야 할 준칙이나 예절 정도로 된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형식이야말로 아주 존중할만한 최고의 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본 작가 미시마유키오의 성애 소설들을 보면 역시 성행위에 대한 지극한 형식미를 추구하고 있어 특정 종교들에서 나타나는 기괴한 성교 예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닥치는 문제의 하나가 사정(射精)이라는 것이다. 아마 독자들 중에 다소는 불유쾌한 이런 경험을 갖지 않은 분들이 없겠지만 14세 소녀가 첫 월경을 내듯이 이 정도 나이에 이른 건강한 소년들도 사정을 하게 된다. 물론 시기를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또는 복잡하고도 그럴듯한 꿈을 동반한 채 사정에 이르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 사정에 관해 중세 교회가 내리고 있는 복잡한 규율과 벌칙은 정말 읽어둘만하다. 다음 회에 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