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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홍보하는 '유튜브 속 PPL'… 네티즌은 왜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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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PPL(간접광고) 때문에 드라마 보기 많이 힘드셨죠? 간접광고계의 큰손 피피엘 킴이 체포됐습니다.”

뉴스 앵커의 멘트와 함께 고개 숙인 피피엘 킴의 모습이 나온다. 경찰은 “기껏 볼 만해진 극의 흐름을 방해해 왔다”며 긴급체포 이유를 설명한다. 피피엘 킴의 PPL 만행도 낱낱이 드러난다. 주인공들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서서 뜬금없이 매트리스 케어 작업을 하고, 수영장을 거닐고 있는 주인공 뒤에서 휴대폰의 방수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통화하며 수영도 했다. 현장 검증도 이어진다. 드라마에서처럼 매트리스 케어를 해보이는 피피엘 킴.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소리 지른다. “맞춤 케어 렌털? 평생 숙면 걱정 없겠네.”

이 유튜브 영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자체가 코웨이의 매트리스 렌털과 케어 서비스에 대한 PPL이다. 모바일 콘텐츠 제작사 72초TV가 2016년 만든 이 작품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유튜브로 광고를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때지만 조회수는 50만 건에 달했다. TV에선 보기 힘든 톡톡 튀는 아이디어, 억지로 끼워넣은 PPL을 비웃듯 제대로 PPL을 해버리는 과감함. 덕분에 이 작품은 UPL(유튜브+PPL)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나 PPL을 넘어 UPL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기업들은 앞다퉈 모바일 콘텐츠 제작사나 1인 크리에이터에게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에 대한 반응도 PPL과는 전혀 다르다. TV 속 PPL엔 짜증을 내던 이들도 적극적으로 공유 버튼을 누른다. 기업만이 알던 브랜드(brand) 가치가 재밌는 콘텐츠와 블렌드(blend·섞다)돼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고 있다.

2016년 초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이 현상은 광고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워너브러더스와 이니스프리는 72초TV와, TNGT는 콕TV와 함께 유튜브 광고를 제작했다. 아예 웹드라마 시리즈 하나가 통째로 광고가 되기도 한다. 배달전문업체 배달의민족과 72초TV 직원들이 같은 건물에 입주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까마귀상가’는 무려 10부작이다. 유튜브 광고를 즐기고 확산하는 네티즌도 급증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상에 더빙을 하는 유명 1인 크리에이터 ‘장삐쭈’가 만든 맥스웰하우스의 커피 영상은 조회수 510만 건을 넘어섰다. 이런 반응에 ‘콘텐츠에 브랜드를 입힌다’는 의미의 ‘브랜디드 콘텐츠’라는 전문용어도 생겼다.

UPL은 처음 접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매우 직설적이다. 대놓고 회사명을 말하고 경쟁 업체 노출에도 거리낌이 없다. “역시 배달하면 배달의민족이죠.” “너 요기요 시켜 먹는 거 아냐?” 대중의 반감을 살 만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하나의 스토리가 펼쳐지면서 오히려 독특한 재미를 준다. 웹드라마 ‘오구실 3’에도 이니스프리 얘기가 매회 나온다. 하지만 대중은 거부감보다 30대 여성의 고민과 일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평을 보낸다.

이런 ‘맥락’은 기존 PPL에서 찾기 힘들다. 한 드라마에선 자동차 자율주행 모드로 설정한 채 달리는 차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나왔다. 또 다른 드라마에선 집을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게 기다렸다는 듯 특정 브랜드의 샌드위치를 접시에 꺼내 놓았다. 노골적으로 상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색하다’고 느껴진 순간 공감은 사라져 버렸다. 드라마가 끝난 후 ‘최악의 PPL’로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UPL이 효과를 보는 이유는 공급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PPL엔 제품 노출 횟수와 정도 등에 기업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유튜브에선 불가능하다. 기업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주요 키워드만 알려줄 뿐 제작자가 기획부터 출연, 촬영 등을 모두 알아서 한다. 기존 방식대로 개입하려 들면 아예 제작을 거부하는 크리에이터도 많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품이 재미가 없으면 즉시 외면받기 때문이다.

《맥락을 팔아라》의 저자 정지원은 말한다. “지금 고객에게 의미있는 소비는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소비다.” UPL의 성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과의 연결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앞으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만이 승기를 잡을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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