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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작은 지구, 호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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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에서 그레이트 오션로드까지 /
세계서 가장 작은 나라, 헛리버 공국을 아시나요 /
멜버른 남서부 해안 따라 300㎞ /
그레이트 오션로드 '천혜의 절경' /
'12사도' 봉우리 일몰에 감동 /
피너클스 사막엔 석회암 기둥 즐비 /
지구에서 우주 체험하는 듯

여러 번 호주를 다녀왔지만 한 번도 ‘호주는 OO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유명한 도시에서부터 내륙의 아웃백, 원주민인 에보리진의 마을까지 달리면서 ‘호주는 작은 지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다양한 인종과 자국 내 3시간의 시차, 공존하는 다른 기후와 자연. 이번에는 20여 일간 동남서북을 다녔다. 역시 호주는 익숙해지지 않는 신비의 땅이었다.

시드니=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시드니에 ‘시크릿가든’이 있다고?

방송으로 호주를 가는 건 두 번째였다. 방송이 좋은 건 평소에 쉽게 갈 수 없었던 곳을 찾아간다는 것. 이번에도 다양한 곳이 새로운 여정에 포함돼 있었다. “호주는 이제 잘 알지 않아?”라는 주변인의 얘기에 “호주는 갈수록 새로워!”라고 답하고 한국을 떠나왔다. 이미 다녀온 적이 있는 시드니가 첫 여정지였다.



시드니는 한국인에게는 호주의 대표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호주 수도는 시드니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캔버라지만 역시 ‘호주’ 하면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 곳이 ‘시드니’다. 인구의 4분의 1이 이곳에 모여 있고, 호주를 대표하는 건물인 오페라하우스나 하버브리지 등이 시드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정에선 잘 알려진 명소는 모두 건너뛰기로 했다. 오페라하우스는 페리를 타고 지나며 먼발치에서 손을 흔들고 지나쳤다. 하버브리지 역시 다리 밑을 거닐며 올려다본 게 끝이었다. 시드니에서 찾은 곳은 단 한 곳 시크릿가든이다.

웬디스 시크릿가든(Wendy’s secret garden)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웬디’라는 여인이 버려진 땅을 개간하며 가꾼 아름다운 정원이다. 유명한 화가였던 남편과 함께 1970년 이곳에 정착한 그녀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1992년 남편이 사망했고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인근에 버려진 땅을 개간하며 혼자 나무와 꽃을 심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정원 만들기에 딸이 동참하면서 그 규모가 더욱 커졌지만 딸 역시 2001년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돕기 시작하면서 정원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시크릿가든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이가 많아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정원은 아름다웠다.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와 사방으로 이어진 오솔길은 마치 동화 속에 걸어 들어온 기분을 선사했다.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지만, 이곳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특별한 사람들이 찾는다. 바로 연인들이다.

영문으로 ‘시드니에서 연인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을 검색하면 이곳을 추천한다고 한다. 필자가 찾은 날도 이탈리아에서 온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가 될 여자 친구와 이곳에 왔다는 실비오(Silvio)는 필자가 사진작가라고 말하자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메일 주소를 적어준다. 필자의 카메라 앞에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키스하는 커플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뒤로는 은은하게 하버브리지가 배경이 돼준다. 말 그대로 비밀스러운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방송으로 왔다고 소개한 뒤 다음날 이곳을 일군 웬디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땐 슬픔을 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요. 전 세계에서 나무를 공수해오느라고 수 백만달러를 썼습니다. 덕분에 지금 이곳에선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지요.”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었지만 빈틈없고 당당했다. 정원만큼이나 그의 마음과 노력이 아름다웠다. 나는 인생을 통해 그 어떤 것에 이 정도로 미쳐본 적이 있었던가. 나머지 여정을 이어가며 계속 되뇌었다.

말이 필요 없는 절경, 그레이트 오션로드

다음 여정은 멜버른을 지나 그레이트 오션로드. 시드니에서 해안을 따라 달리면 멜버른까지만 해도 약 1100~1200㎞나 된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고민하다가 결국 자동차 여행을 선택했다. 육로를 통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느리게 달려야만 만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호주가 못사는 나라도 아닌데 시드니를 벗어나고 조금 지나자 휴대폰이 먹통으로 바뀌었다. 호주는 땅이 넓어서 육로로 여행한다면 해당 지역에서 통화가 가능한 통신사를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도 인적이 드문 곳이나 내륙 아웃백으로 떠난다면 인터넷 사용은 물론 전화도 불가능할 수 있다. 지난 방송 촬영에서도 세 개의 통신사 유심칩을 모두 준비해서 갔지만, 아웃백 지역을 다니면서 전화를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곳곳에 마을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무전기를 사용하거나 유선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멜버른으로의 여정에서 처음 들른 곳은 울런공(Wollongong)이다. 호주 원주민인 에보리진의 말로 ‘바다의 소리’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최대 명소는 바닷물이 함성을 치며 솟아오르는 키아마의 블로홀(Blow hole)이다. 하얀 등대 옆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바다 쪽에서 ‘촤악~!’ 하며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달려가 보니 우렁찬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물기둥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높이도 너비도 대단하다. 해안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물기둥은 오랜 시간 침식 작용으로 생긴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강한 파도와 함께 밀려온 물이 점점 좁혀지는 구멍을 통과해 다시 하늘로 향한 구멍으로 뿜어내는 것인데 보통 20~60m까지 치솟는다.

중간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멜버른을 지나 그레이트 오션로드(Great Ocean Road)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멜버른 남서부 해안을 따라 300㎞가량 구불구불 이어진 길인데 절경으로 시작해 절경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발지는 호주 서핑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토키(Torquay). 영화 <폭풍 속으로>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벨스비치가 가장 유명하다. 세계의 서퍼들이 한 번쯤 와보고 싶은 서핑 명소라고 한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백미는 단연 포트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12사도(Twelve Apostles)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의미하며 이름을 붙인 것인데 자연이 수만 년간 풍화와 침식작용을 반복하며 절벽에 만들어낸 작품이다. 최초 12개였던 봉우리가 현재는 8개만 남았다고 한다. 이마저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다. 이곳은 언제 와도 아름답지만, 일몰 시간에 맞춰 오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헛리버 공국

서호주로 넘어갈 땐 비행기를 이용했다. 호주가 넓은 곳임이 분명한 게 출발지인 멜버른에서 도착지인 퍼스까지 비행시간이 4시간이고 시차가 3시간이다.



서호주에선 첫 여정지로 버셀턴 제티(Busselton Jetty)를 선택했다. 이곳은 140년 전 만들어진 목제 부두로 그 길이가 1.84㎞로 남반구에서 가장 길다. 이곳의 바다가 깊지 않아 배가 해안까지 들어올 수 없어 부두를 길게 만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 화물선을 위한 부두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관광지로 탈바꿈해 연 4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부두 끄트머리에 있는 해저 관측소에서는 계단을 따라 8m 아래로 내려가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바닷속 풍경을 볼 수 있다.



부두 한 편에서 시즌에 매주 열린다는 수영대회가 한창이었다. 막 수영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온 노인을 만났다. 자신을 70살이라고 소개한 맥컬린 씨. 시니어 부문 3㎞에서 우승했다고 한다. “수영을 즐기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젊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요.” 그의 말과 여유로운 표정에서 어떤 우승자보다 그가 최고라고 생각됐다.

버셀턴에서 북쪽으로 퍼스를 지나 세르반테스까지 약 400㎞를 달리면 피너클스 사막이 나타난다. 이곳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지구에서 만끽하는 우주 경험’이다. 광활한 붉은 사막 위로 각양각색의 수천 개 석회암 기둥이 솟아있다. 크기와 높이도 다양한데 가장 높은 것은 4m에 달한다고 한다. 걸음마다 나타나는 돌기둥들은 마치 우주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에 온 기분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다시 350㎞ 정도 북쪽으로 향하면 생소하지만 ‘헛리버 공국(Principality of Hutt River)’이란 곳에 도착한다. 국내엔 정식 소개된 적 없는 이곳은 레너드 캐슬리(Leonard Casley)라는 사람이 세운 마이크로네이션이다. 1970년 이곳에서 밀 농사를 하던 레너드가 밀 생산량을 제한하는 서호주 정부와 분쟁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땅에 나라를 세워 호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며 자신을 레너드 1세 공(公)임을 선언했다고 한다. 호주 정부는 이를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사였던 캐슬리는 호주가 영국 연방 국가라는 사실을 이용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 헛리버 공국이 영국 연방에 속한 국가임을 선언했다. 영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한 호주 정부가 1972년 어쩔 수 없이 헛리버 공국의 독립을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캐슬리 가족은 여전히 서호주 정부와 갈등 중이라고 했다. 책자에 관광지라고 소개된 헛리버 공국엔 여느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입장료나 기념품 판매점, 놀이기구 등이 없었다.

보란 듯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고 나라를 대표하는 성 같은 곳에서 허세를 떠는 사람도 없었다. 92세의 캐슬리는 오히려 필자와 함께 걸으며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행 정보

웬디스 시크릿가든은 시드니 대표 교통수단인 전철이나 페리를 이용해 찾아갈 수 있다.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 항구나 역에서 내려 루나파크를 지나 오르막을 따르면 눈앞에 숲이 나타난다. 들어가는 곳은 여럿이지만 길 끝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웬디의 집과 마주한 정원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정원 뒤로 하버브리지가 보이는 벤치가 사진 촬영 포인트다. 입장료는 없다.

키아마 블로홀은 조수가 남동쪽으로 바뀔 때 바닷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인데 낮에는 물론 야간에도 볼 수 있다. 밤에 보는 물줄기도 아름다워 새벽 1시까지 조명을 비춘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차량을 렌트해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인근에서 이틀 정도 머물면서 캠핑을 하고 트레킹 코스를 걷는 것도 좋다. 바다와 숲이 반복되는 코스는 이정표가 잘돼 있고 경사진 구간엔 걷기 좋도록 계단과 데크 등을 설치해 놓았다.

오늘의 신문 - 2024.05.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