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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韓·美 내년 추가 금리 상승의 최대 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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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요즘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저(低)물가, 좀 더 정확하게는 낮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고심거리가 되고 있어서죠. ‘저물가의 덫에 걸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푼 막대한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금융위기로 망가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수년간 ‘유동성 잔치’를 벌였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해졌고, 이제 경기 회복세도 강해졌다는 판단이 든 겁니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과 보유자산 축소 같은 긴축 정책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최근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경제 회복세는 두드러집니다. 경제성장률은 높아지고 실업률은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물가가 좀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상 경기가 살아나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집니다. 하지만 각국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를 모두 밑돌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농산물 등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은 대개 1%대에 머물고 있고요.

내년 2월 퇴임을 앞둔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올해 낮은 인플레이션은 미스터리”라고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미스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핵심 목표거든요.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틀 명분이 약해집니다. 금리 인상 결정이 쉽지 않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Fed는 종전 연 1.00~1.25%였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1.25~1.50%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3월과 6월에 이어 올들어 세 번째 인상이었습니다. 낙관적 경제 성장 전망에 기반한 인상이었습니다. Fed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5%로, 내년 전망치는 2.1%에서 2.5%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지난 9월 발표 때의 1.9%에서 조정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들은 “Fed가 부진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아직 풀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면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저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다”, “Fed의 신뢰도가 훼손돼 앞으로 통화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습니다.

곧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은 현재의 제로금리를 동결하고 양적완화를 계속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식은 다소 잠잠하다”며 저물가에 대한 고충을 드러냈고요. ECB의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1.4%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선 “금융위기 이후 성장과 물가 사이의 관계가 약해져 근원인플레이션이 1%대 중반에서 크게 높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경기와 물가간 상관관계 약화가 중앙은행이 고민하는 문제”라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지난달 30일 한은이 6년 5개월 만에 연 1.25%였던 금리를 연 1.50%로 0.25%포인트 인상하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른 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근거로 저물가를 꼽기도 했습니다. KDI는 내수와 일자리 등 경기 개선세가 아직 뚜렷하지 않고 이에 따라 물가 상승률도 주춤한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각국의 저물가에는 노동 생산성 증가세 둔화, 임금 협상력이 약한 시간제 취업자 비중 증가, 인구 고령화에 따른 고용과 임금간 관계 약화 등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물가가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중앙은행들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큰 고민거리로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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