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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어디까지 가봤니②) 평창 동계올림픽 종은 어디에서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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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드퐁=허란 기자) ‘올림픽 종(鐘)’ 하면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의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소리는 귓가에 익숙하다. 스위스에 올림픽 종을 만드는 곳이 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태어난 곳이자 프랑스 접경지역인 스위스 라쇼드퐁에 있는 블롱도(Blondeau) 주조공장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는 이곳에 30개의 올림픽 종을 주문했다.

이 주조공장은 1830년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넘어온 이주민의 가족 사업으로 시작했다. 1966년 레이몬드 블롱도 씨가 새 주인이 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은 그의 사위인 세르게 휴구엔(53)씨가 공장을 인수해 2대째 운영 중이다. 23세 아들도 종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다.





이곳의 종 제작 방법은 수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금속 원형틀에 종 모양의 모델을 넣고 모래를 채운 뒤 공기압축 방식으로 모래를 굳힌다. 모델을 제거하면 모래 거푸집이 완성된다. 여기에 구리 80%와 주석 20%를 섞어 1100℃로 가열한 청동을 붓고 식힌다. 틀을 열고 모래를 제거하면 구릿빛 종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양을 다듬은 뒤 가운데 방울과 추를 달면 종이 완성된다.






이곳에서 만드는 종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의 목에 매다는 ‘카우벨(cow bell)’로 사용됐다. 안개가 심할 때 종소리로 소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유용했다. 그러나 종소리가 소음으로 여겨지면서 카우벨 수요는 급감했다. 블롱도 공장은 1980년대에는 1년에 17t 상당의 종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500kg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렇다고 공장 문을 닫을 계획은 없다. 주문량이 줄면서 휴구엔 씨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공장에 나와 종을 만든다. 기념품 판매 등으로 소득의 절반 가량을 채우고 있다.

다행히 6~7년 전부터 매출 감소세는 멈췄다. 올림픽 종, 결혼·출생 기념 종, 기업의 선물로 꾸준히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4kg 무게의 큰 종은 280 스위스프랑(약 30만원), 작은 종은 120 스위스프랑이다. 휴구엔 씨는 “중국산 저가 종 때문에 시장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최상의 품질을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오고 있다”고 말했다.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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