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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감축에 사활 건 두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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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공작기계, HRSG 등 매각 마무리
1년만에 엔진, 포터블 등 다시 매각모드
두산중공업도 조직개편 등 비용절감 나설 듯

차입금 11조에 연간 이자비용만 5700억
박정원 회장 "부채 줄여라" 내부에 특명

(안대규/김익환/이태호 기자) 두산그룹이 계열사를 잇따라 매물로 내놓으며 대대적인 재무구조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작년 5월 이후 계열사 매각이 없었던 두산그룹이 최근 두산엔진, 포터블파워 사업부 등의 매각을 공식 선언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정부의 ‘탈(脫)원전·탈석탄’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받은 두산중공업의 경우 임원 감축과 조직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불확실한 미래에 선제 대응하기위해 “부채를 줄이라”는 특명을 내부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채감축’에 총력

두산그룹은 2014년부터 작년 5월까지 2년간 KFC, 두산동아, 몽따베르, 렉스콘사업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공작기계사업부, 두산DST, 배열회수보일러(HRSG)사업부 등 알짜 계열사와 자산을 모두 매각했다. 2007년 4조원을 차입해 밥캣을 인수하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유동성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중국 굴삭기 수출이 급감한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 15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은 계열사 매각 등으로 모은 2조5000억원을 현금화해 일단 위기의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 “공작기계사업부를 사모펀드 MBK에 판 것은 정말 아까웠다”고 “나중에 다시 사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계열사 매각 소식이 없었던 두산그룹이 최근 다시 구조조정 모드에 들어갔다. 두산중공업은 자회사인 세계 2위 선박엔진업체 두산엔진에 대해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16일 공시했다. 두산밥캣 역시 비(非)건설기계 부문인 포터블파워 사업부에 대해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지난 15일 공시했다. 두 사업은 두산그룹이 표방하는 글로벌 인프라지원사업(ISB)이나 주력 사업인 발전·에너지·건설기계 등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산그룹은 두 사업체 매각을 통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두산그룹은 앞으로 두산인프라코어(59.3%)와 두산엔진(10.6%)이 보유 중인 두산밥캣 지분 중 경영권을 제외한 지분에 대한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매각시 손실이 나지 않으려면 두산밥캣의 주가가 4만6000원이상까지 올라야 한다.

◆빚 줄여 영업현금흐름 강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인수자가 나타나면 무엇이든 팔 수 있다.”

최근 두산그룹을 다녀간 한 투자은행(IB) 관계자가 전한 두산그룹의 ‘부채 감축’의지다. 계열사 매각 뿐만 아니라 외부 투자자 유치와 자산 유동화 작업도 한창이다. 그룹 계열사들이 2020년 입주할 분당 신사옥 등 어떠한 자산도 예외 없이 부채를 줄이는 데 활용되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문재인 정부들어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비용을 줄이려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매출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원전과 석탄화력사업의 국내 시장이 축소되면 실적 하락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가 일시 중단된 여파로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19.1% 감소한 1736억원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120여명 가량인 임원을 감축하고 석탄화력발전과 원전 관련 조직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산그룹이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멘 배경은 영업으로 번 돈의 상당수가 이자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재무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빚을 크게 줄여야 영업현금흐름도 좋아지고 신용등급이 올라가 자금조달에도 숨통을 트일 수 있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 몇 년간을 보면 그룹의 현금 창출 능력은 상당히 약화돼 왔다”며 “무엇보다 재무건전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두산그룹의 현재 차입금은 11조원이고 부채비율은 272.1%다. 차입금은 2015년 14조원에서 3조원 줄었지만 여전히 과도하는 게 시장의 평가다. 두산그룹은 차입금 이자비용만으로 연간 5700억원 가량을 내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으로 9000억원에서 1조원을 벌어들이는 데 절반이상이 대출 이자로 나가는 셈이다. 대출 이자보다 버는 돈(영업이익)이 2~3배(이자보상배율)이상인 다른 대기업과 달리 두산은 여전이 1.8배 수준이다.

계열사 중에 가장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두산건설의 경우 지난해 12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자비용으로만 974억원을 지출하며 순손실을 냈다. 올 3분기까지 42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이자비용은 637억원에 이른다. 두산인프라코어도 차입금이 3조824억원으로 연간 1000억원을 웃도는 이자비용을 낸다. 두산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두산과 두산중공업이 ‘A-’ 두산인프라코어(BBB)와 두산엔진(BBB+)의 신용도는 ‘BBB’급이다. 두산건설은 투기등급인 ‘BB+’다. 두산의 경우 지난달 공모시장에서 회사채 1000억원을 조달하는 등 나은 여건이다. 하지만 나머지 계열사들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빚을 갚고 있다.

은행들이 두산그룹에 여전히 대출하기 꺼려한다는 점도 두산그룹이 재무개선에 속도를 낸 배경이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 3년간 두산그룹에서 여신 3조원이상을 회수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은 현재 두산그룹에 대한 여신을 사실상 닫아놓고 있는 상태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 9월 국내 17개 대기업그룹의 부채비율과 영업현금흐름(EBITDA) 마진율을 비교한 결과, 두산그룹은 한화, 이랜드와 같이 부채비율이 높고 수익성이 낮은 C그룹으로 분류됐다.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좋은 A그룹엔 현대자동차, 롯데, 신세계, 포스코, LG, SK, CJ가 속했고 다음단계인 B그룹엔 GS, LS,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포함됐다. 신평사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현금창출력 대비 과도한 재무부담, 두산건설에 대한 지원 부담 등으로 어려움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차입금을 3조~4조원 가량 줄여야 현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김익환/이태호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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