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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고시텔’ 낸 심규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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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대학시절 휴학하고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줄곧 고시원에 머물렀다는 신예 사진작가 심규동(29) 씨. 고시원에서 산다고 하면 “고시 공부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고시 공부를 하지 않아도 고시원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고시원에 살면 집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미니멀한 삶을 살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가진 사진 기술을 활용해 주거공간으로써의 고시원을 알리고 싶었죠.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개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고시원 사진을 찍게 됐어요.”

처음부터 사진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다. 그는 간호학을 전공하면서 이 일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스무 살 때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과 학비는 부모님에게 받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오로지 경험을 위해서 시작한 거였다.

평소 글쓰기와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많아 휴학을 하고, 여행 작가 교육과정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잡지사에 취직해 여행 기자로 일했다. 막상 일을 해보니 자신이 쓰고 싶고, 찍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못 하는 성격이라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9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 사이 군대도 다녀오고, 두 번의 휴학과 잠깐의 직장생활,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졸업과 동시에 웨딩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더 저렴한 고시원을 찾다가 사진집 속 고시원을 알게 됐고, 당시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은 그곳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 신림동에서도 가장 싼 고시원이었다. 낡고 허름한 그곳이 심 씨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고.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아 대학을 졸업하고 웨딩스튜디오에 취직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 대중의 취향에 무조건 맞춰야 하는 상업사진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죠. 그런 찰나에 원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됐고, 6개월 만에 살고 있던 고시원에서 나와 낡고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갔어요.”

사진을 찍으러 제 발로 찾아간 고시원이었지만, 선뜻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도 고시원에 살아봐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조차 보여주기 힘들었어요.”

굳은 마음을 먹고 온 만큼 잘해내고 싶었는데, 처음 몇 개월은 인물사진을 단 한 컷도 찍지 못했다. 6개월쯤 지나자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휴게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그곳 사람들이 먼저 사진 찍는 게 취미냐고 물어왔다.

“고시원을 옮긴지 6개월쯤 지나자 저도 그곳 사람들과 행색이 비슷해지더라고요. 서로 편한 사이가 되니 하나둘 먼저 촬영하고 싶다고 얘기를 해줬어요. 여름 무렵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인 만큼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났고, 종종 경찰이 오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제 또래로 보이는 경찰이 왔는데, 저를 범죄 위험인물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어요. 나도 이곳에 살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똑같아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를 찍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찍고 싶어서다. 고시원 작업은 부감(높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것) 사진이 메인이다. 시선이나 앵글 자체도 주관이 반영되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시선을 빼고 똑같은 시선으로 찍으려고 애썼다.

“연출은 빼고, 찍는 과정도 똑같이 통일했어요. 똑같은 과정으로 한 롤씩 찍었죠. 사실 사진집에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제외하고 부감 사진만 넣고 싶었지만, 몇 명밖에 찍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그는 빈곤층의 소외를 보여주고자 고시원 사진을 찍은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다양하게 생각하길 바랐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좁은 방 안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의 사진을 보고, ‘이곳에 살아도 기타를 치면서 행복해할 수 있구나. 난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찍고 싶었어요.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빈곤하니까 불행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깨고 싶었죠. 사진 중에 국가 유공자 분이 선글라스를 끼고 거울 앞에서 멋을 부리는 사진이 있어요. 그 안에도 행복은 존재해요.”

하지만 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이 모두 힘들어졌다. 그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니 그들을 이용하는 느낌도 들어 자괴감을 느꼈다는 심 씨.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았으므로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고 합리화하면서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사진을 찍으니까 전시를 하고, 사진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슈화 시키고 싶었다. 사진전을 통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스템적인 문제, 자본주의의 문제를 봐주길 바랐다. 지난 5월 국회에서 사진전을 연 이유다.

“막상 사진전을 열었는데, 정치인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기사화가 되면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대학생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위로가 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고시원이 공론화가 되면서 그들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죠.”

그는 꿈을 찾기 위해 많은 일들을 시도했고, 사진작가의 일도 그중에 하나였다. “저 또한 제 물음에 답을 찾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들이 ‘작가’라고 불러줘서 사진작가가 된 것뿐이에요. 지금도 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사진집 <고시텔>을 통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게 됐고, 자신의 재능이 사회적으로 이롭게 활용됐으면 좋겠고 말하는 심 씨.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곧 새로운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고. (끝) /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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