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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지금이 병자호란 때보다 100배 어려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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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국제부 기자) 영화 ‘남한산성’이 관객수 375만명을 넘기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70만부 넘게 팔린 소설가 김훈 씨의 장편 ‘남한산성’입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집계에 따르면 영화 개봉 1개월 전 하루 평균 소설 판매량은 12.5권이었다가 개봉 후 55.5권으로 늘었다고 하는군요.

김훈 씨는 자신을 소개할 때 소설가 외에도 ‘자전거 레이서’란 말을 씁니다. 2000년 처음 펴낸 자전거 여행 산문집 ‘자전거 여행’도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애마 ‘풍륜(風輪)’을 타고 전국 곳곳을 다닌 기록이 김훈 특유의 문체로 잘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유명 소설가이자 자전거 애호가인 김훈 씨가 서울시민과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김훈 씨는 지난 20일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주최한 ‘한강 자전거여행’ 행사에 참여해 시민 20여명과 함께 자전거 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는 인사말에서 “오래간만에 한강에 나와 젊은이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며 “어린이가 그네 타는 평화, 여고생이 웃는 평화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 뒤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소설가·자전거 레이서 김훈과 함께 한 자전거 행렬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두에서 시속 11~20㎞ 사이로 누구나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달렸습니다. 샛강생태공원에서 잠시 멈춰 한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 밤섬에는 400명가량 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섬의 높은 지형 때문에 여름이면 한강물이 마포로 넘쳐 사람들이 해를 입었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밤섬을 폭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건 박 대통령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생각이지요. 덕분에 마포를 구하고 여의도가 개발됐습니다. 사람이 떠난 밤섬은 자연이 다시 복원해 이제는 철새들의 쉼터가 됐습니다. 그러나 옛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어요. 이처럼 자연을 부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소설은 언제쯤 나오냐는 독자 질문에 김씨는 “내년에 나올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좇고 있어 혹시 ‘총의 노래’가 출간되는 것 아닌가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 작품은) 아직 멀었다”며 “염두에는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흑석동 명수대 근처에서 잠시 쉴 때 김훈 씨는 한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전쟁 세대로서 지금 한강의 발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이지요. 내가 중학교 때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였어요. 대학 무렵엔 120달러였고. 지금은 3만불이라고 하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삶의 무늬가 한강에 있어요. 그때는 한강 다리가 인도교 하나 철교 하나 있었죠. 지금은 27개가 넘을 겁니다. 그걸 보면 참으로 질기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역동적으로 발전해왔고. 하지만 많은 비리와 차별을 깔고 발전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인기를 끌자 당시 정세와 현재 한반도 위기를 대입해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지금의 위기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지금이 100배 더 어려워요. 그때는 명·청 갈등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남북 대결이 있습니다. 여기에 핵폭탄까지 있어요. 그때는 프레임이 간단했고 내부 분열이나 이념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비교할 수 없죠.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게 얼만데.”

반포 한강공원까지 약 13㎞ 거리의 자전거 타기가 끝나고 김훈 작가는 다시 한강과 서울의 역사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속도보다 자연과 풍경을 느껴볼 것’을 권했습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한강 다리에도 역사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과 다리가 조금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한강 다리는 옛 나루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송파나루 광진나루 양화나루 같은 거점에서 다리가 만들어졌죠. 이렇게 역사 위에 현대를 세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바꿔나가며 사는 것이지요. 옛 한강 다리는 기술이 부족해 교각이 많고, 최근에 세운 것은 교각 수가 적습니다. 교각 아치의 모양도 다리마다 다르지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며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면 시속 20km 미만으로 가며 이곳저곳 살펴보세요. 다리마다 표정이 다릅니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그건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스포츠가 됩니다. 자연과 하는 공부가 좋은 것입니다.” (끝) /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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