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돌아오라, 소렌토로…천 번의 굽이 길, 엽서같은 풍경이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 /
칵테일 빛 아말피 해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
라벨로 거리에선 바그너의 오페라 울려퍼지네 /
안드레아 대성당 계단에 앉아 그대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고 /
오렌지 파라솔 촘촘한 소렌토에선 어부 유혹한 사이렌의 노래 떠올리며 /
빛나는 바다 풍경에 흠뻑 빠져 /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포지타노, 3시간 하이킹 코스 '신의 길' 유명 /
카프리 섬과 해안가 풍경에 황홀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Sorrento)부터 살레르노(Salerno)까지 50㎞나 되는 아말피 해안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천 번의 굽이 길’이라 부른다. 폭이 좁고 곡선도로가 많지만 보이는 곳마다 황홀한 풍경이 연속해서 펼쳐지는 아말피 해안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숙련된 운전자도 사고 위험이 큰 길이고 커브를 돌 때마다 경적을 울려 보이지 않는 커브 뒤의 차량에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여행자들은 자동차를 렌트하기보다는 베수비아나 순환선을 타고 80분을 달려 소렌토에서 다른 마을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창 너머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탈리아로 떠나자.

교황청이 주문하는 제지 중심지 아말피

체레토 산(Monte Cerreto) 발치에 폭 좁은 물리니 계곡 골짜기 안에 자리한 아말피는 4세기에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물리니 계곡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수력 제지 공장이 있다. 아말피를 대표하는 기념품은 제지다. 아말피 해안가 지역 전체가 경사가 가파른 산에 터를 잡아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아말피는 제지 생산으로 크게 번성해 나갔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아주 두껍고 표면은 크림처럼 부드러운 세계 최고의 종이를 만든다. 얼마나 품질이 뛰어난지 교황청에서도 주문해서 썼다고 한다. 아말피의 좋은 종이로 만든 엽서를 여러 장 사서 안드레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ndre) 앞 광장을 찾았다.

아말피의 수호성인 성 안드레아에게 봉헌된 대성당은 여러 번 보수를 거치며 로마네스크, 비잔틴, 고딕, 바로크 양식을 모두 품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 됐다. 62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11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해 온 위엄 있는 청동문과 우뚝 선 종루를 보고, 계단 꼭대기에 앉아 엽서를 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태양이 더욱 높이 솟아 아말피의 여러 상점과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셔터를 내리고 낮잠을 자러 들어간다. 파라솔 하나를 빌려 물놀이하다 보면 금세 저녁식사 준비를 하러 나올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운이 좋은 해에는 11월까지도 여름을 느낄 수 있어,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느지막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사이렌의 역사적 무대, 레몬의 고장 소렌토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인기 휴양지로 사랑받은 소렌토는 입구부터 상큼한 레몬 향기가 풍긴다. 툴툴거리는 시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했다.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소렌토는 율리시스의 후손이 세운 마을로 이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고 한다.

소렌토는 반은 사람, 반은 새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을 떠올리게 한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가다 사이렌의 달콤한 노래에 넋을 잃고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 전설의 무대가 소렌토 앞바다다. 경찰차나 응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곡조도, 가사도 모르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이탈리아 가곡의 배경으로 익숙한 이름의 소렌토는 아말피 해안가에서 가장 호텔이 많고 교통편이 잘돼 있는 규모 있는 마을이다. 소렌토는 나폴리만을 바라보고 해안가 뒤로 마을이 있는 묘한 구조로 돼 있다. 소렌토에서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역시 오렌지색 파라솔이 촘촘히 꽂힌 해변이었다. 화사한 색깔만큼 해변가도 빛이 났다.



소렌토는 세계 최고의 레몬 생산지다. 나폴리에서 아말피 해안가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벽화에서 소렌토 레몬이 1세기부터 재배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레몬은 역사와 품격을 뽐내듯 눈을 찌르는 햇빛을 받아 황금처럼 반짝인다. 소렌토 레몬은 와인 등급만큼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소렌토 레몬으로 인증받게 된다. 소렌토 레몬은 개당 무게가 80g 이상이어야 하며 지정된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 소렌토 레몬은 다양하게 쓰인다. 젤라토와 리몬첼로, 소르베 등 새콤달콤한 디저트나 과실주를 만드는 데도 쓰이고, 기념품으로 한 아름 사게 되는 사탕과 비누에도 들어간다.



소렌토에서 40분 정도를 달리면 포지타노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가장 편안한 여행지도, 가장 처음 갔던 여행지도 아니지만 이곳만 가면 가슴이 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맑은 물가에 자리 잡은 작은 이 마을을 첫 방문 이후 해마다 찾았으며 그 모든 계절의 모습을 보았고 언제나 그리워했다. 포지타노는 아말피 해안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마을로 물가도 가장 비싸고 호텔도 많지 않아 준비성 없는 여행자를 애먹이는 곳이지만 아페롤 스프리츠 칵테일 빛깔의 노을지는 바다 풍경이 모든 고생과 어려움을 보상해준다.

로마나 나폴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일일 남부투어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포지타노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그란데(Grande) 해변은 정작 동네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오른쪽으로는 포르닐로(Fornillo), 왼쪽으로는 아리엔조(Arienzo) 해변이 더 예쁘고 덜 붐비며 여유롭다. 아리엔조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하거나 그란데 해변과 아리엔조를 종일 오가는 작은 보트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한적하다. 포지타노를 갈 때마다 아리엔조 해변을 하루에도 여러 번 찾다 보니 사공과 친구가 돼, 삯을 내지 않고 타게 됐다. 이쪽 해변에서 저쪽 해변으로 오가는 짧은 시간 동안 사공과 나폴리 축구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점점 더 많이 찾아오는 한국인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어설픈 이탈리아어를 섞어 나눴다.

포지타노 시내 한가운데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랜드마크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꼬불꼬불한 포지타노 골목길에 밝지 않은 여행자의 길잡이가 돼준다. 이 교회 벽에는 이름 모를 화가가 물고기를 잡는 여우 그림을 그려 놓았다. 바다와 산의 변치 않는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아말피 해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그림이다. 옆집 아이가 낙서해 놓은 것 같은 선 몇 개의 단순함에 눈이 편안하다.

작은 삽을 여러 개 싣고 달리는 정원사의 흙투성이 트럭과 자기 자리를 잘도 찾아 흐드러지게 핀 색색의 꽃과 나무, 같은 길을 셀 수 없이 달려 조금 지쳐 보이는 베스파까지 어느 하나 포지타노의 아름다움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이곳에 다녀가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

조바심 느끼지 않아도 좋은 여행지 포지타노

모든 여행자에게는 적합한 크기의 여행지가 있다. 나에게 런던은 조금 버겁고, 서울은 너무 크고, 파리는 꽤 적당하다. 그리고 포지타노는 완벽하다. 한 나절이면 주요 거리를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포지타노 주변의 해변들을 모두 찾아보려면 보름도 부족하다. 몇 밤 더 묵어가면 윗마을 노첼레와 몬테페르투소, ‘신의 길’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하이킹 코스를 밟아볼 수 있다. 3시간 걸리는 7.8㎞의 길은 현기증이 있는 사람은 시도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아말피에서 약 1시간 떨어진 거리의 마을 아게롤라에서 출발해 포지타노 윗마을 노첼레에서 끝이 난다. 한걸음씩 다가오는 카프리 섬과 해안가 풍경에 지치는 줄도 모르고 걷게 된다.



갈 곳도 할 것도 많지만 포지타노가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조바심이 나지 않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달음박질로 5분이면 마주할 수 있는 바다에 하루 한 번 발을 담그는 것으로 그날의 할 일을 다한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알람을 맞춰 놓지 않고 다음날 해치워 없애야 할 목록을 만들지 않고 잠드는 것이었다. 포지타노에서의 시간은 해가 뜨겁고 새가 지저귀어 눈을 뜨고 수영복을 입고 방문을 나서 아침식사 후 바로 바다로 뛰어드는 날들이었다. 사실 이탈리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문만 열고 나서면 펼쳐지는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무언가 대단한 것들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자꾸만 솟아나는 날들이었다.



바그너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라벨로

아말피에서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하는 음악의 마을 라벨로(Ravello)는 아말피 해안가를 대표하는 마을 중 유일하게 해수욕을 할 수 없는 곳이다. 완만한 곡선의 산길을 오르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저지대 비탈의 계단식 포도밭은 아직 영글지 않아 온통 푸르다.



1880년 바그너가 오페라 ‘파르시팔’을 완성한 곳으로 유명한 라벨로는 해마다 바그너 음악 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한다. 매년 축제 때는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을 초청해 바그너 작품들을 연주한다. 파르시팔의 ‘여기 클링소르의 마법의 정원이라네’라는 대사도 라벨로를 대표하는 명소 두 곳 중 하나인 빌라 루폴로(Villa Rufolo)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D H 로렌스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라벨로에서 완성했다. 앙드레 지드는 라벨라에 대해 “해안보다 하늘이 더 가깝다”고 예찬했다. 마을의 또 다른 상징인 빌라 침브로네는 세간의 눈을 피해 숨고 싶은 연인들의 보금자리로도 유명했다. 할리우드 스타 그레타 가르보가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할리우드를 피해 도망와 한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현재는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 호텔은 세계 각지의 허니문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과연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고 빌라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무한한 테라스’라 불리는 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뻗은 테라스에 서면 바다를 전부 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고 갔을 사랑의 밀어가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여행정보

아말피 해안은 로마 직항편을 이용해 로마에서 자동차를 렌트해 이동하거나 로마 또는 나폴리 공항에서 소렌토, 아말피, 포지타노로 이동하는 셔틀 서비스를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한국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아말피 해안가를 여행하는 방법은 로마에서 남부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이다. 소렌토, 아말피, 포지타노 그리고 옵션으로 카프리 섬과 폼페이까지 하루 안에 후다닥 돌아보고 로마로 다시 데려다 주는, 각 지역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교통 시설이 모두 포함된 편의성 만점의 일일 패키지 투어다. 그러나 아말피 해안가의 현지인들은 항상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이 남부투어 패키지로 와서 이 아름다운 동네의 매력을 100분의 1도 보고 가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라며 아쉬워한다. 물리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해서 볼 것, 느낄 것이 적은 것은 아니다.

아말피, 소렌토, 포지타노, 라벨로 사이를 이동하는 버스는 매일 있으며 여름 성수기 시즌에는 거의 1시간마다 차가 지나간다. 카프리섬으로 들어가는 보트편도 소렌토, 아말피, 포지타노 항구에 마련돼 있으며 보트를 렌트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아말피=글·사진 맹지나 여행작가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