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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의 부양가 장면에 담긴 심오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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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훈 문화부 기자) 뮤지컬 ‘서편제’가 오는 11월5일까지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 무대에 오릅니다. 현대적 연출과 전통적 한(恨)의 정서를 잘 조화시킨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2막 초반에 주인공 송화에서 소리를 가르쳐준 아버지 유봉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송화는 부양가를 부르고 앙상블(코러스 배우)은 현대무용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된 군무를 춥니다. 인터넷에서도 이 장면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지나 연출가에게 이 장면의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래는 연출가과 주고 받은 문답입니다.

▶부양가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혹은 느낌)를 전달하고 싶었나.

“뮤지컬에는 여러 종류의 무용들이 많이 나온다. 서편제에서는 한국 전통무를 현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전통의 동시대화는 항상 내가 고민 하는 표현법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가진 전통이 어떻게 아름답게 현대적으로 표현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군무를 하는 앙상블의 복장은 어디서 모티브를 가져왔나. 순수한 한국 전통의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적 선에 디자이너 홍미화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상상력을 접목한 것이다. 요즘 국립무용단도 의상이 얼마나 파격적인가.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면 안 되는 장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과 뮤지컬은 과거는 물론, 동시대도 넘어서는 미래 지향적 비전이 있어야 한다.”

▶희고 긴 천의 양쪽 끝을 두 명의 앙상블이 잡고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다른 앙상블 한 명은 장식이 달린 상자 같은 것을 들고 그 천의 양쪽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이 장면의 의미는 뭔가.

“서편제 부양가의 첫 장면에는 ‘용선’을 든 무녀가 등장한다. 용선은 한국의 지역 무속신앙인 경상도 오구굿, 동해안 별신굿 등에서 쓰이는 무구 중 하나다. 종이로 만든 작은 배를 형상화한 것으로 거기에 저승으로 가는 망자를 태웠다고 생각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을 상징하는 길고 넓은 하얀색 천은 망자의 천도(불교사상에서 유래한 말로 ‘하늘로 가는 길’이라는 뜻)를 의미한다. 용선을 천 위에서 흔드는 건 그 길에 용선을 띄워 망자를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상징적 행위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무녀의 지전춤은 망자가 저승에서 사용할 돈궤를 종이로 만들어 양손에 들고 추는 춤이다. 지전춤은 진도 씻김굿에 나오는 춤이 대표적이다.”

▶송화가 희고 긴 천을 목에 두른 뒤 양손으로 그 천을 잡고 살풀이 하듯이 흔들며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의미는 뭔가.

“길고 흰 천은 경기도 도당굿에서 무녀들이 들고 추는 무구에서 유래했다. 이 천은 망자가 극락왕생 하도록 나쁜 액을 막고 축원하는 의미가 있다. 이는 후에 기방춤인 살풀이춤의 무구로 정착돼 살풀이춤 수건으로 발전했다. 부양가에서 송화는 아버지의 평안한 천도를 위해 무구인 흰 수건을 사용해 죽은 아버지의 액을 털어내고 넋을 기린다. 천도 의식은 산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망자의 영혼을 달래고자 하는 한국 토속신앙의 무속의례 절차이다.”

▶부양가 장면에 대한 기타 부연 설명할 부분이 있나.

“부양가는 뮤지컬적 관점에서 보면 전체 구성에서 좀 튀는 면이 있다. 이렇듯 무용으로 하나의 독립된 장면으로 구성 하는 것은 내 모든 창작 뮤지컬에 등장하는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 무용이라는 장르를 매우 좋아할 뿐더러 뮤지컬에서 무용의 비중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편제의 부양가 장면을 통해 우리의 전통무가 뮤지컬에서도 단순히 쇼적인 쓰임새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존재로 얼마나 아름답게 녹아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끝)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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