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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맥주 인기 끄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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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한경비즈니스 기자) 젊은 층과 ‘맥덕(맥주덕후)’을 중심으로 불던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청와대에까지 밀어닥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한국의 대기업 경영자들과 ‘호프 미팅’을 가졌다.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이 자리에서 마신 맥주는 국내 크래프트 맥주 기업 세븐브로이가 만든 ‘강서맥주’다.

과거 이런 자리에선 주로 전통주나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아직 생소할 수 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중요한 미팅 자리에서 마셨다는 점에서 세븐브로이와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관심은 매출로 나타났다.

홈플러스에서는 호프 미팅 후 나흘간 세븐브로이의 강서맥주와 달서맥주의 매출이 2주 전 대비 150% 이상 늘어나며 인기를 증명했다.

한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는 이른바 수제 맥주라고 불린다. 크래프트 맥주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 규모 맥주 제조업체에서 생산한 맥주를 통칭하는 용어다.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를 처음 정의한 곳은 미국 양조협회다.

소규모 양조 업체가 대형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한 맥주를 분류하기 위해 ‘수공예’라는 뜻의 크래프트를 사용했다. 미국 양조협회에서 정의한 크래프트 맥주의 기준은 소규모(연간 생산량 9억5000리터 이하), 독립성(외부 자본 25% 이하로 독립적 경영), 전통(전통적 재료·방식으로 제조)에 부합하는 맥주다. 현재 미국에는 4000개 넘는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양조장)가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2~3년 사이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빠르게 확산됐다. 크래프트 맥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홈브루잉’이 새로운 취미로 부상했다. 호텔과 대형마트·편의점도 앞다퉈 크래프트 맥주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기의 핵심은 맛이다. 기존 대기업 맥주에 질린 국내 소비자들이 개성 있고 희소성 있는 수제 맥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는 “기존의 한국 맥주는 주로 라이트라거(페일라거)”라며 “라이트라거는 맛과 향이 매우 약해 소주를 타 마시는 용도였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재료의 배합에 따라 수만 가지의 개성적인 맛을 가진다”고 말했다.

맥주는 물·보리·효모·홉 등 네 가지 재료가 주가 된다. 크래프트 맥주의 매력은 바로 양조하는 사람이 이 재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한국 색채 살린 크래프트 맥주도

“맥주는 패션과 같아요. 가을엔 트렌치코트를 입고 싶고 비가 오면 롱부츠가 신고 싶듯이 맥주도 날씨나 환경, 그날 기분에 따라 마시고 싶은 종류가 달라집니다. TPO(시간·장소·상황)에 맞는 맥주를 선택해 즐기는 거죠.”

플레이그라운드브루어리(이하 플레이그라운드)의 브루마스터(맥주 양조 기술자)인 김재현 이사가 설명하는 크래프트 맥주의 매력이다.

다양한 맛만큼이나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에 대한 투자·유통·마케팅 방법까지 크래프트 맥주 사업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플레이그라운드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브루어리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자유로 옆.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는 2015년 2월부터 1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작년 1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역사가 길지 않지만 국내 크래프트 맥주 업체 중에서는 제법 큰 설비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재무팀을 거쳐 미국 코카콜라에서 일한 천순봉 대표와 미국 졸리펌킨 브루어리에서 도제식 양조 교육을 받은 김재현 이사가 함께 설립했다. 플레이그라운드의 상징인 하회탈 디자인은 놀이터라는 뜻의 브랜드 의미를 담아 ‘별신굿놀이’ 하회탈에서 영감을 얻었다.

천순봉 플레이그라운드브루어리 대표는 “현재 한국 양조장의 사장이나 브루마스터들 중 미국인이 많아 맛도 미국 색채를 띤다”며 “한국적인 색채를 지닌 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뿐만 아니라 복분자를 이용한 맥주 등 맛에서도 개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른 브루어리가 맥주를 만들고 납품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곳은 음식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탭하우스’를 통해 맥주와 어울리는 한식을 제공하며 차별화했다. 치킨이나 피자가 아닌 제육볶음·순두부찌개와 어울리는 맥주를 개발하고 생산한다.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세종(Saison : 벨기에에서 만들던 농주), 램빅(Lambic : 벨기에 상면 발효식 맥주)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래프트 맥주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즐기는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중 커피처럼 크래프트 맥주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나왔다. ‘

캔메이커 바이 크래프트브로스(이하 캔메이커)’는 크래프트 맥주를 캔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펍이 아닌 곳에서도 국내 크래프트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라는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돼 2016년 서래마을에서 탄생했다. 마침 2016년 9월 펍에서 판매하는 생맥주의 테이크아웃을 금지하는 규제도 풀렸다.

캔메이커는 오직 국내에서 양조되는 40여 종의 국산 크래프트 맥주만 취급한다. 그중 자체 레시피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식으로 제조한 맥주 8종도 함께 판매한다.

캔메이커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인증 사진을 부르는 독특한 캔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강남역 표지판을 형상화한 강남 페일에일은 현재 크래프트 맥주의 가장 큰 트렌드인 ‘지역명’을 업계 최초로 도입한 제품이기도 하다.

또 두 달에 한 번씩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아트레이블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한국이 전 세계 크래프트 맥주 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30년 역사의 뉴욕 판매 1위 글로벌 크래프트 맥주 기업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 회사도 생겼다. 제주도 한림읍에 자리한 ‘제주맥주’다.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제주맥주를 선택한 이유는 경험과 기억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이 크래프트 맥주의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제주맥주의 양조장은 연간 2000만 리터의 맥즙을 생산할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제주맥주에서 첫째로 출시한 ‘제주 위트 에일’의 레시피는 전 세계 셰프들의 오스카상인 제임스비어드 어워드를 맥주업계 최초로 수상한 브루마스터 개릿 올리버가 개발해 관심을 모았다. 레시피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주 토속 음식과의 조화를 고려했다. 제주 감귤피를 사용해 제주의 색을 담았다.

제주맥주가 최근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크라우드펀딩’ 때문이다. 제주맥주는 이번 크라우드펀딩에서 맥주업계 최초로 직접 지분 투자 방식을 선택해 오픈 전부터 화제가 됐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올해 국내에서 진행된 주식형 크라우드펀딩 중 최단 시간인 11시간 만에 목표 금액 7억원을 달성했다.

크래프트 맥주 기업에 대한 투자는 몇 년 새 계속되고 있다. 비단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벤처캐피털 등 대형 자본이 크래프트 맥주업계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소규모 브루어리를 필두로 한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기업 맥주에 대한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크래프트 맥주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이끌던 브루어리들이 잇달아 대기업에 인수됐다.

세계 최대 맥주 회사로 오비맥주를 인수한 앤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가 2011년 시카고의 대표적 양조장인 구스아일랜드를 인수한데 이어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내 최대 생산 규모를 가진 골든로드브루잉 등 5개 기업을 인수했다.

AB인베브에 인수된 구스아일랜드는 창업자 존 홀이 여전히 전면에 나서면서 크래프트 맥주의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업 인수 후에도 크래프트 맥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이 직접 브루펍을 인수하거나 운영하기 시작했다. 신세계와 YG푸드는 직접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진주햄은 2015년 크래프트 맥주 제조 회사인 카브루를 인수했다. 이 밖에 더부스·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플래티넘맥주 등도 벤처캐피털을 통한 수십억원대 투자 유치를 성공시켰다. 또 LF는 주류 수입사 인덜지의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런 자본의 유입에 대해 한편에서는 소상공인에 대한 위협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는 아직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 유입이 소규모 브루어리가 할 수 없는 다양한 마케팅 시도와 유통 채널 확대를 도와 국내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대형마트에서 각광받고 있는 수입 맥주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실제 홈플러스가 강서맥주·달서맥주·해운대맥주 등 ‘지역 맥주 시리즈’를 출시한 뒤 수입 맥주에 밀렸던 국산 맥주의 판매 비율이 7월에 다시 50%를 넘어섰다. 대기업 주류 제조사 대표 맥주의 판매 신장률이 전월 대비 10% 미만인 것을 감안할 때 전월 대비 27.3%까지 증가한 크래프트 맥주가 홈플러스 내의 국산 맥주 전체 판매 규모를 늘리는 데 앞장선 셈이다.

◆지속적인 성장, 세금에 달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성 있는 크래프트 맥주 개발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금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크래프트 맥주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가 8월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2월부터 소규모 맥주 면허 사업자들의 대형마트·편의점 등 소매점 유통을 허용한다. 기존에는 사업자들의 제조장과 영업장 등에서만 판매가 가능했다.

맥주 면허는 저장조 규모로 일반 맥주 면허와 소규모 맥주 면허로 나뉜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주류 등 대기업은 일반 맥주 면허를 가진 사업자이며 저장조 시설 기준 5~75kL 규모는 소규모 맥주 면허 사업자로 구분된다.

현재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맥주는 모두 일반 면허를 가지고 있는 제조업체 제품이다.

정부는 소규모 맥주 면허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현행 5~75kL에서 5~120kL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세제 혜택이 확대되고 그만큼 크래프트 맥주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업체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종가세(가격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조세)’는 해결되지 않았다. 주세법상 출고 가격에 세금을 매기도록 한 종가세는 크래프트 맥주의 원료는 물론 첨가 재료, 포장재, 마케팅 비용까지 모두 포함해 최대 72%라는 고율의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양질의 재료를 쓰면 출고가가 올라 몇 배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다.

천순봉 대표는 “다양한 맛을 표현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쓰거나 장비의 성능을 높일수록 세금이 늘어나는 구조여서 최저의 설비로 최대한의 맛을 표현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며 “수입 크래프트 맥주는 세와 수입 신고 가격에만 세금이 붙기 때문에 해외 양조장에서 맥주를 들여오는 게 더 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종가세를 유지하는 한 양질의 술을 개발할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수입 맥주와의 가격 경쟁력과 맛에서도 밀릴 수 있다. 따라서 국내 맥주가 수입 맥주에 비해 과세 체계상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논란도 나온다.

수입 신고 가격만 낮추면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개성 있고 독창적인 맛이 크래프트 맥주의 생명인 만큼 세부적인 규제 완화까지 수반돼야 지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끝) / kye0218@hankyung.com 출처는 한경 비즈니스 제1134호. 자세한 내용은 한경비즈니스 웹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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