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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리더

프로페셔널한 사람과 일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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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윤 리더스컴 대표) 2003년 어느 겨울. 회사에 당시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한 청년이 수줍은 듯이 들어오더니 "인사를 좀 드리고 가겠다"고 했다.

이 인상 좋은 공무원 스타일의 청년은 " 저... 제가... 세무사 갓 합격하여 창업을 했는데...기존 세무사와 일하고 계신 줄은 압니다만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하며 명함과 전단을 주는 것이다.

경영을 하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세무사는 지인의 소개를 받는 경우가 많다. 또 절세 노하우가 많은 것으로 판단되는 규모가 크거나 경력이 많은 세무 공무원 출신의 세무사를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이제 갓 세무사가 된 청년이 무모(?)하게 영업 전선에 나온 것이다. 또 그래도 나름 세무사인데 영업은 직원을 뽑아 맡기면 될 터인데 직접 전단지를 들고 다니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참신하고 믿음직해보였다.

나는 다음날 전화를 걸어 "우리 한번 해봅시다!" 하고 그날로 회계 업무를 맡겼다.

아... 그는 초보 세무사라 특별히 세금을 감면하는 노하우도 없었고 편법을 알려주는 스킬도 없었다. 그때 나는 한창 돈을 벌 때라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절세전략을 주문할 때도 그저 "허허" 웃고는 '자기 능력 밖'이라며 솔직히 인정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세무사가 밉기도 하다가 한편으로는 또 우직해 보였다. 그런 세무사를 그저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내가 큰 일을 벌이는 바람에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소송에 채권에...그리곤 세금마저 밀릴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세무사 월 비용을 주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벼랑 끝 신세였다. 나는 전화하기도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고 회계는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어렵게 극복을 해가는 과정에서 그 청년 세무사가 그간 무보수로 꾸준히 세무대행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그 세무사에게 물었다.

"아니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에 뭘 믿고 그렇게 하셨냐?"

그러자 그 세무사는 "저의 첫 고객이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을 믿어주셨잖아요!" 그 사람에게 베푼 나의 작은 믿음이 이후에 뜻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선물로 다가온 셈이다.

누구나 프로페셔널한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만큼의 전문가가 되려면 누군가는 그를 믿어주고 시작을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다.

완전 '초짜(초보)'가 프로가 되는 길은 결국 그 시작을 열어주는 작은 믿음에서 비롯한다. 성실로 노력으로 보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프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그때 만나서 인연을 맺은 그 청년 세무사는 서울 마포 합정동에서 가장 클라이언트가 많은 잘나가는 세무사로 활약하고 있다. 나는 우리 회사의 회계를 그에게 맡기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