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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1인출판 열풍을 끌어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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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혜 문화부 기자) TV 예능 프로그램이 ‘1인 독립 출판물’ 출간을 새 포맷으로 흡수했습니다. KBS 2TV가 지난 6일 방송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 얘기입니다.

1인 독립 출판이란 개인이 내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드는 출판 형태를 말합니다. 책이 잘 팔리지 않으면 종이값도 회수하기 어렵지만 기꺼이 펜을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추동력입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서점 겸 문화공간 ‘최인아 책방’이 회원의 책 쓰기와 출간을 돕는 ‘북 메이킹 클럽’으로 유명하고,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은 용산동 ‘스토리지 북 앤 필름’을 비롯해 서울에만 수십 곳이 있습니다.

‘냄비받침’은 연예인이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을 방송을 통해 보여줍니다. 스타들이 각자 출판 기획서를 발표하고, 글감을 모으기 위해 현장조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을 공개하며 시청자와 소통합니다. 마지막에 실물로 된 책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방송인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이 고정 멤버 겸 MC를 맡고 배드민턴 선수 이용대와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가 게스트로 출연해 흥행성을 높였습니다.

중견 방송인으로 특유의 재치와 익살이 강점인 이경규는 대선주자와의 인터뷰라는 제목의 책 출판을 준비합니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후보들과의 대담을 담는 책입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경규가 “당선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출마한 건가”, “차기 대권에 도전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유 의원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담은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까지 섭외를 마친 이경규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게도 출연 의사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경규는 정치인의 내면과 실패 극복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을 책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발랄한 걸그룹 트와이스는 예능 분위기를 띄웁니다. 트와이스는 <트와이스 깔거야?>라는 제목의 잡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정말 이 책을 냄비 밑에 깔 것이냐’는 의미와 ‘트와이스의 사생활을 공개하겠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습니다. 트와이스는 ‘밤이 되었습니다’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등의 목차 속에 자신들의 24시간 사생활을 담을 계획입니다.

방송은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1인 출판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책을 처음 내보는 트와이스 멤버들은 첫 화에서 “쓰다 보면 정리가 안 될까봐 걱정된다”고 털어놓습니다. 자신만의 책을 내 본 경험이 있는 방송인 유희열은 게스트로 출연해 “이 책이 냄비받침으로 쓰이면 또 어떠냐”며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1인 출판의 첫 번째 의미”라고 조언합니다.

지난 4월 첫 딸을 얻은 이용대가 책을 만드는 과정은 시청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그는 “내 인생 마지막 사랑인 딸을 위한 책”이라며 <내 생애 마지막 연애>라는 책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도 앉아 있을 틈 없이 바쁜 육아 일상을 방송을 통해 전합니다. 세대와 시대, 지역별 건배사를 모아 <한잔 줍쇼>를 펴내겠다는 안재욱, 걸그룹의 역사와 행동지침 등을 담은 <걸그룹 보고서>를 내겠다는 김희철은 예능다운 웃음을 더합니다.

여행이나 요리, 야생 체험, 육아 등을 다루는 예능이 많은 요즘 방송가에 신선한 예능입니다. 연출을 맡은 최승희 PD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기 표현을 많이 한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하는 요즘 세대의 욕구를 담아보려 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책이 예능이라는 포맷에는 다소 무거운 소재이지 않느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최 PD는 “출연자들이 만드는 책의 주제가 예능적”이라며 “다른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주제와 형식 속에서 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방송이 출연자들의 사생활이나 인터뷰·현장 탐방 등을 보여주는 데에만 지나치게 치중할 경우 ‘독립 출판물 출간’이라는 포맷이 희석되고 연예인 신변잡기 방송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은 제작진이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출연자들이 이 프로그램과 자신의 책에 걸고 있는 기대는 각별합니다. 이경규는 “냄비받침은 향후 내 10년을 보장할 프로그램으로, 나는 방송과 책으로 노후에 먹고 살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안재욱은 “방송이 사랑을 받으면 책 한 권이 아니라 전집을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누구나 자신만의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묶은 책으로 서로 소통하는 문화 현상이 더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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