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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을 뒤흔드는 '애매모호한 춤(ambiguous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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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혜 문화부 기자) 동유럽 발칸 반도에 있는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 시비우는 매년 이맘때 유쾌한 에너지로 들뜹니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인 ‘시비우 국제 연극제(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가 열리기 때문이지요. 머나먼 우리나라엔 다소 생소하지만 1993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24회를 맞은 역사 깊은 축제입니다. 열흘간 연극, 무용, 음악 등 16개 분야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립니다.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올해 축제에 우리나라에서는 안무가 김보람을 주축으로 하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바디 콘서트’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2010년 초연된 ‘바디 콘서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춤전문지 댄스포럼이 주최한 그 해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국내에서 수차례 공연되면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이 지난 13일 현지에서 올린 ‘바디 콘서트’가 동유럽을 제대로 뒤흔들었습니다. 이 페스티벌 매거진인 ‘aplauze’는 지난 15일 낸 잡지의 표지에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공연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 매거진은 작품 리뷰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무용단이 유럽인들에게 낯설 법도 한데 두 차례에 걸쳐 열린 공연 모두가 전석 매진됐다고 합니다. 전설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공연을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바디 콘서트’가 해외에서 단독 공연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작품의 춤을 짠 김보람 안무가는 “한국 현대무용이 그동안 서유럽권에는 많이 소개됐지만 동유럽권에는 그렇지 못했기에 이번 공연이 소중하고 뜻깊다”고 말했습니다.

단체명인 앰비규어스(ambiguous)는 ‘애매모호한’ 이라는 뜻입니다. 현대무용이라고만 구분하기엔 애매모호하다는 그들 춤의 특징을 반영해 지은 이름입니다. 단체의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김보람은 춤과 음악을 대할 때 기본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목표는 ‘춤의 언어화’입니다. 음악과 움직임의 연결점을 분석해 기호화함으로써 춤을 예술적 차원에서 언어적 차원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라는 설명입니다.

‘바디 콘서트’는 그런 작업의 산물입니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장마다 다채로운 음악과 춤을 펼치는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작품 구성의 출발점은 ‘몸 그 자체만의 순수한 언어가 과연 어디까지의 감동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관객은 흔히 작품을 보며 ‘이 공연은 뭘 말하고자 하는가, 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마련인데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어떤 메시지나 의미를 직접 전달하기보다 몸을 통해 음악과 춤을 표현하고, 그 몸짓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동유럽을 유쾌하게 흔들고 돌아온 ‘바디 콘서트’가 다음달 1일 익산예술의전당, 9월 1일 과천시민회관에서 펼쳐집니다.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인 무용단은 8월 25~26일엔 ‘인간의 리듬’을, 9월 29~30일엔 ‘애매모호한 밤’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합니다. 고전무용의 틀을 깨고 탄생한 현대무용의 틀을 다시 한 번 깨는 이들이 선보일 애매모호하고 유쾌한 춤판에 눈길이 갑니다.(끝) /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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