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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반장' 김석동, 재등판 얘기는 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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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 금융부 기자) ‘김석동’이란 이름이 관료사회에서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금융권 전체적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준다. 옛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 ‘영원한 대책반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평이 난 강한 추진력. 관료 중에서는 드물게 ‘SD’라는 영문 이니셜로 통할 수 있는 중량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능력과 중량감을 아우르는 표현들이다.

최근 김석동 전 위원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재기용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2011~2013년 금융위원장을 이미 지낸 그가 다시 컴백할 것이란 설(說)이다. 단순히 항간에 떠도는 설(說)은 아니다. 청와대가 그를 금융위원장으로 재기용하려는 구체적인 정황도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의 경기고 동기이자 ‘절친’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삼고초려를 했다는 건 확인된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전화로 ‘금융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는 것도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참고로 김 전 위원장의 형은 고(故) 김석철 명지대 교수다. 김 교수는 문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동창인 건축가 승효상씨의 스승으로, 문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 김 전 위원장 본인도 문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문 대통령의 경남중학교 1년 후배다. 이런 인연만 따지면 그가 새 정부의 장관급을 맡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나흘전부터 퍼지기 시작한 ‘재등판설’에 김 전 위원장은 묵묵부답이다. 지난 14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도 그는 “고민 중”이라고 했다. 금융위원장 제안을 받았으나 마음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고민은 상당히 깊어보였다. “(금융위원장 제안을) 어찌해야할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재등판설’을 접하는 관료사회에선 이런 질문이 나온다. “청와대는 왜 지금 SD(김 전 위원장)를 금융위원장에 앉히려는 것인가”란 궁금증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먼저 김 전 위원장이 지닌 경륜·중량감을 감안할 때 금융위원장 자리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전 위원장은 행정고시 23회다. 1953년생이니 64세다. 새 정부의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행시 26회, 1957년생(60세)이다. 만약 김 전 위원장이 다시 금융위원장을 맡으면 정부 조직체계상 후배인 김동연 부총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저 그런 경제관료라면 나이·기수를 따지지 않아도 되겠지만 김 전 위원장은 ’그저 그런 관료’가 아니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명맥을 잇는 정통 모피아(재무부 관료)의 핵심이다. 경제부총리 자리를 맡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왜 SD가 금융위원장을 맡아야 하느냐’는 질문은 ‘어떤 미션을 맡기려는 것인가’와도 맞물려 나온다. 이게 두번째 이유다. 앞서 소개했듯이 김 전 위원장은 ‘영원한 대책반장’으로 통한다. 어렵고 궂은 일을 처리해서다. 5.8부동산 특별대책반장(1990년), 금융실명제대책반장(1993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1995년), 한보사채 대책반장(1997년) 등이 그가 맡은 직책들이다. 참여정부 때에는 4.3 카드대책, 신용불량자 대책, 8.31 부동산대책 등을 그가 주도했다. 돌이켜보면 굵직한 경제·금융 이슈가 터질 위기 때마다 등판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 금융위원회가 처리할 현안은 별로 없다. 기업 구조조정은 임종룡 현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마무리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가계부채가 문제라고 지적되지만 당장 곪아터질 수준은 아니다. 한 금융관료는 “SD가 와서 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것도 아닌데, 청와대가 무슨 역할을 주문하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왜 지금 SD(김 전 위원장)를 금융위원장에 앉히려는 것인가”는 질문에 아직까지 어떤 답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일각에선 ‘브레이크 역할론’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 전 위원장에게 대통령이 요구하는 역할이 ‘브레이크’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브레이크’의 반대편에는 ‘엑셀러레이터’가 있다. 속도를 내려는 자(者)를 막는 게 브레이크다.

새 정부에서 엑셀러레이터는 부지기수다. 지난 5월 초 대통령선거 이후 단행한 인사에서 개혁·진보 성향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대거 포진했다. 청와대만 하더라도 장하성 정책실장, 김수현 사회수석 등이 있으며 내각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개혁적 성향의 인사들이 임명됐다. 지금까지 주요 부처 장관급 중 정통관료 출신은 김동연 부총리 한명 뿐이다. 지금같은 구도대로라면 새 정부의 정책은 좌(左)편향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있다. 전직 고위 관료의 말이다. “개혁성향의 정부가 개혁정책을 펴는 게 당연하지만 정부정책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려서는 안된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을 ‘급이 안맞는’ 금융위원장에 다시 앉히려는 이유는 짐작 가능하다. 청와대와 여당, 외부출신 장관들이 주창할 개혁성향 정책에 대해 무게감 있는 정통 경제관료가 ‘방향타 수정’ 역할을 해달라는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마치 참여정부 때 이헌재 부총리가 소위 386그룹과 맞서 경제정책의 편향을 경계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에게 요구했다는 해석이다. 정부부처 고위 관료는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문 대통령은 과거 386세력의 독주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불러온 요인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자칫 독주하기 쉬운 개혁세력에 맞서 경제정책 만큼은 김 전 위원장처럼 중량감 있는 인사가 방향설정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김 전 위원장의 ‘장고(長鼓)’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난제와 같은 경제현안을 해결하는 것보다 새 정부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훨씬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다. 김 전 위원장 재등판은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등에서 그의 재기용에 반발하고 있다.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등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묻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의 ‘재등판’ 여부는 금명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SD’의 선택은 무엇일까.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부산 출생(1953년)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재정경제원 금융부동산실명제실시단 총괄반장, 부동산반장, 외화자금과장 △재경부 증권제도과장 △금감위 법규총괄과장, 감독정책과장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차관보 △금감위 부위원장 △재정경제부 1차관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금융위원장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現)

(끝)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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