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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삶, '우리 극'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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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혜 문화부 기자) “이게 바로 혹세무민 아니오? 여기가 불법(佛法)을 연구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부처가 있어야 하는데, 부처가 어데 있소?”

“쬐금 기다리믄 돌아올 것이오. 아, 저기 오는구만요.”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부장 송종태가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에게 묻자 소태산이 먼 곳을 가리킵니다. 불상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오나 했더니 땀에 전 농부들만 보입니다. 송종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들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농부들 아니오? 저들이 어째 부처요?”라고 묻습니다. 소태산이 답합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부처가 따로 없고 불법 아래 모인 중생들은 다 부처입니다.”

소태산의 삶과 깨달음을 그린 연극 ‘이 일을 어찌할꼬!’가 다음달 4~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오릅니다.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원불교가 지원해 연극집단 연희단거리패가 제작한 작품입니다. ‘난세를 가로질러 간 성자 소태산 박중빈’을 부제로 소태산의 일대기를 그립니다.

1막은 한 소년이 삶에 대해 품은 의문이 어떻게 큰 깨달음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수행편’, 난세를 가로지르며 삶 속에서 깨달음을 실천하는 소태산의 생애를 보여주는 2막은 ‘교의편’입니다.

한국적인 소재와 양식을 다루는 데 능숙한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이 작품을 쓰고 연출했습니다. 원불교 교도인 그는 “성자(聖者)라고 하면 인간을 초월하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소태산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은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성자라는 것”이라며 “소태산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냈다”고 소개했습니다.

원불교는 1916년 4월 교조인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깨달음을 계기로 시작된 종교입니다. 소태산의 깨달음은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는 장차 물질문명이 발달하며 정신의 세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원불교는 그래서 ‘정신문명’을 강조합니다.

이윤택 연출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꿈꾸는 토착 종교로 출발한 원불교의 성격을 가장 한국적인 공연 양식으로 풀어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우리 가곡인 정가와 범패, 판소리 등이 극 전반을 아우르고 택견과 선무도, 덧뵈기즉흥춤 등 우리 고유의 움직임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원불교의 성지인 전남 영광을 주 무대로 전라도 방언을 연극 언어로 표현합니다. 남도 특유의 신명과 해학을 담아내겠단 계획입니다.

실력파 배우들이 연기를 맡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4대 햄릿 윤정섭이 청년 소태산 역을, 국립극단 연극 ‘궁리’에서 세종 역을 맡은 이원희가 대각 후의 대종사 소태산을 연기합니다. 여기에 연희단거리패가 ‘굿과 연극’ 기획전으로 선보인 굿극 ‘오구’, ‘씻금’, ‘초혼’ 등에서 우리 전통의 소리로 극을 이끈 연희단거리패 배우장 김미숙이 소태산의 여제자 바랭이네를 맡아 극의 중심을 잡습니다.

이 연출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메시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로봇과 인공지능 등이 사회를 뒤흔드는 오늘날 현실을 꿰뚫는 치명적인 언어”라며 “종교와 예술의 결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이 시대에 대해 사람다운 삶에 대한 연극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끝) /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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