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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 편견깨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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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면 강제로 가두고 때린다고 해서 다른 치료법을 생각했습니다. 입원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때 치료를 시작했다면 아이가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만난 한 20대 조현병 환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환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우관계 등으로 힘든 일을 겪은 뒤 정신질환 증상이 시작됐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10개월 간 약을 먹었지만 임의로 투약을 중단했고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치료는 제대로 되지 않았고 조현병 증상은 심해졌습니다. 주변 사람이 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 누군가 옷을 바꿔두고 간다는 망상도 시작됐습니다. 급기야 집에 불까지 질렀습니다. 환자는 이후로도 두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까지 인지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습니다.

또 다른 30대 남성 환자도 여러차례 입원을 거부하다 센터를 찾았습니다. 우울감 무기력증 등으로 어렵게 군 생활을 끝낸 환자는 가족의 권유로 사설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하지만 창문조차 없고 감옥 같은 환경에서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환자는 개방병동이 있는 센터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 상태입니다. 현재는 외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두 환자는 모두 적절한 치료를 받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이 질환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원을 가면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환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신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낀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정신질환은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할수록 환자의 이해도도 높고 약물 반응도 좋습니다. 영국은 2조원을 들여 정신질환자가 2주 안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환자 상당수는 2~3년 정도 시간이 지나 병을 키운 뒤 병원을 찾습니다. 정신질환과 정신과 병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정신병원을 생각하면 감옥 같은 입원병동을 떠올립니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나쁜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쌓인 편견은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으면서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중증 정신질환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는 30일 발효되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은 이 같은 잘못된 고리를 끊기 위한 시작입니다. 이 법은 현재의 강제입원 제도가 재산 다툼에 악용돼 위헌판결을 받으며 탄생했습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보호자와 전문의 한명만 동의하면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시킬 수 있습니다. 2013년 11월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한 할머니는 재산문제로 자녀들에 의해 강제입원됐다가 이웃의 도움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인신보호구제를 청구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정신보건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을 했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습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관련 학회 등과 협의해 강제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바꾼 새 법안을 마련했습니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새 법의 이름은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새 법이 시행되면 자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만 강제입원 대상이 됩니다. 2주 이상 강제입원 하려면 전문의 2명이 진단해야 합니다. 1개월 안에 입원 적합성 여부도 심사받아야 합니다. 6개월에 한번 심사했던 입원 연장심사 기간은 3개월로 짧아집니다. 법적 정신질환자의 범위도 줄어듭니다. 중증 정신질환자만 법적으로 정신질환자가 돼 우울증 등 가벼운 질환자는 그동안 정신질환자가 종사하지 못했던 장례지도사, 말조련사, 화장품 제조판매업 등의 자격도 취득할 수 있게 됩니다. 새 법이 안착되면 정신질환자들이 받는 사회적 불이익이 줄고 입원 중심의 치료 환경이 외래, 재활 중심의 치료 환경으로 바뀌게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가벼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일찍 병원을 찾도록 한다는 게 목표입니다.

일각에서는 법 개정으로 인한 혼란을 지적합니다. 그동안 간편했던 입원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초기 인력부족 등으로 인한 혼선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바뀌더라도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는 입원치료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타인에게 해를 주지도 않는 사람이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강제입원을 받는 것이 옳은지 되묻고 싶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자는 입원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날 환자의 주치의로 현장에 참석했던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말로 끝맺겠습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맞는건가요. 외국은 80~85%의 정신질환자가 치료 받겠다고 하는데 한국은 왜 정반대의 수치가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번 강제입원한 환자는 다시 입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료진이 시간을 들여 환자를 설득하고 환자 자율 의사에 반하지 않게 입원한 환자가 퇴원해서도 치료 순응도가 높습니다. 환자가 몰려 정신질환자 한명 당 진료시간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과밀한 치료 관행부터 개선해야 합니다.”(끝)/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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