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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누군지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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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신설되는 경제부총리의 요건으로 3가지를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2013년 1월 무렵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부총리의 부활 방침을 밝힌 뒤 관가는 누가 임명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김 차관은 '누구'보다는 '조건'을 강조했다. 첫째가 전문성, 둘째가 비전, 세번째가 관계였다. 비전에는 복지가 포함된다고 했다. 관계는 네트워크를 뜻하는데 시장과 국민과의 소통을 의미한다고 했다. 실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갖고 주위를 끌고 갈 수 있는 카리스마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가지 조건이 더 있었는데,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이든, 직업관료든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약이 '바이블'이 아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을 봐야 한다고 했다. 당시 김 차관은 공직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심 없이 한 얘기였다. 당시 김 실장은 공직에 있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대화를 나눈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김 차관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으로 발탁됐다.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 해 7월 김 실장과 만났다.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이 논란거리였다. 현 부총리는 경제수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불거지자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안보인다니, 안경을 닦아드려야 하나..."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발언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켰다. 김 실장은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이라며 "이해는 가지만 부총리는 자신의 평가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취득세 인하를 둘러싼 행안부와 국토부의 갈등이 표면화되자 국무회의에서 현오석 부총리에게 "부처 간 이견만 노출돼 국민이 혼란스럽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언론들은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지 못한 부총리를 질타했다고 보도했다. 김 실장은 "대통령의 발언은 '질책'이 아닌 가벼운 경고 수준이었다"며 "핵심은 부처 간 협업의 강조에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스스로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들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일테지만 당시 김 실장은 '일머리'를 강조했다. 특히 위기시에는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조치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00bp 내린 사례를 들었다. 당시 한은이 처음 가지고 온 안(案)은 50bp인하였다. 그대로 결정했다면 시장 반응은 ‘예상했던 수준’으로 평가했을 것이라고 김 실장은 말했다. 당시 코스피 1000선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당시 김 실장은 청와대 금융비서관이었다. (다들 그를 예산통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지만, 필요할 때 충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2013년 기획재정부가 세입경정이라는 '꼼수'를 부려 추경규모를 부풀릴 때 그는 세출을 더 얹어서 추경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좀 오버해야 한다. 시장이나 기업들에 정부가 어떤 정책을 할 것인지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파격적인 신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석에서 한 발언이긴 하지만 "경제원리가 어떻고 요란하게 할 필요없다. 경제는 멘탈리티(심리)다. 그게 모여서 경제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한다"고 했다.

당시 국무조정실의 현안 중 하나였던 밀양송전탑 건설 문제에 대해서는 "단번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답은 분명히 나와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데 치뤄야 할 비용이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뚝심 있게 밀어붙여서 단번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반면 갈등을 조절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도 일머리에 속한다고 했다.

경제부총리는 컨트롤 타워다. 그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시장이나 기업에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를 더하자면 '일관성'이라고 덧붙였다. 최악은 '믹스드(mixed) 시그널'이라고 했다.

문제는 관료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확신범이라는 점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예로 들었다. 개별 부처의 확신이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제각각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그는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에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의 키워드를 3가지로 정리하라면 '축복' '반란' '사다리'라고 생각한다. 축복 앞에는 '위장된'이라는, 반란 앞에는 '유쾌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반어법이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삼성전자에서 주최하는 '열정락서' 강연 초청을 받았다. 처음에 거절했다가 거듭된 요청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청춘에 대한 '힐링'과 '위로'가 아닌 다른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당시 김 실장은 삼성에 2가지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강연과 삼성을 결부시키지 말 것과 강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열정락서 강연자 중에서 공직자는 김 후보자가 유일했다.

그 강연에서 김 후보자는 판자촌 소년가장으로 지낸, 어릴 적 자신에게 닥쳤던 시련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했다. "어려웠던 시절을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이라면서도 자신을 단련시킨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유쾌한 반란은 3가지 종류다. 외부환경을 위한, 자신을 위한, 사회를 위한 반란이다. 환경에 대한 반란은 '위장된 축복'과 연결된 얘기다. 자신에 대한 반란은 '남이 아닌' 자신이 낸 문제 풀기다. 열정락서에서 김 후보자는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는 명사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다는 동사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반란은 계층이동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다. 그는 "가치박탈을 많이 당해서, 이 사회를 뒤집어 엎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며 "지금은 순화, 순치가 됐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관료로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하면서 담아두고 있는 꿈이다.

그는 제도권 교육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어린 학생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거울인데, 지금은 줄서기를 가르친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컨베이어 벨트다. 일단 올라타면 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평생 거기서 내릴 생각을 못하고 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 3가지 반란의 과정을 "유쾌하게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답답하다"는 말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당시 국조실은 박근헤 정부의 국정과제 140개를 신호등 체계로 분류해 이행상황을 점검해 평가했다. 그의 아이디어였다. 녹색등은 원활, 노란등은 관심 필요, 빨간등은 과제 재검토 필요를 뜻한다.

그가 "답답하다"고 한 것은 140개 중 131개가 녹색등으로 나왔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게 뭐냐. 모든 국정과제가 잘 되고 있는 것이냐. 빨간등은 아예 없고, 노란등은 9개밖에 안된다. 이렇게 가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각 부처를 평가하면서 "장관들이 모두 트레드밀(런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각자 땀을 흘리면 뛰고 있지만 정작 목표를 향해서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청와대 보고에도 결과보다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만 보고한다"고 질책했다.

김 후보자는 알려진대로 워커홀릭이다.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성과다. 그와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의 평이다. 그동안 느슨하게 지낸 경제부처는 벌써 긴장을 타는 모양이다. 한국의 경제관료는 거시경제 운용에서 세계 베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라연구소의 분석이다.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뒤 취임 일성으로 어떤 내용의 '커밍아웃'을 할지 관심이다. 지금까지는 대개 모든 신임 장관들이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도전과제가 무엇인 지, 감기를 앓고 있는 지, 성인병이라는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지, 어떤 처방이 필요한 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그가 스스로 경제부총리의 조건으로 언급한 '비전'도 제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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