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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짓 스피너 열풍에 가려진 슬픈 모성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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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400달러가 없어서 특허를 포기했는데 10여 년 뒤에 대박이 터지면서 수천만달러를 벌 기회를 날리게 됐다면 심정이 어떨까. 더구나 본인은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미국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장난감 ‘피짓 스피너(fidget spinner)’의 개발 뒷얘기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어린이 손바닥 정도 크기의 이 장난감은 볼베어링을 중심 축으로 세 개의 날개가 달려 있는 모양이다.(사진 참조). 엄지와 검지로 축을 위아래로 잡고 다른 손가락으로 날개 하나를 돌리면 선풍기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구조다. 미국 전역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득템’ 1순위 장난감이다. 이미 영국 등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열풍이 시작됐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피짓 스피너 인기의 원인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폐증을 앓거나 주위가 산만한 어린이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그럴듯한 분석이 뒤따랐지만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피짓은 지루함을 참지 못해 꼼지락거린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어린이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심심할 때마다 손바닥에 놓고 팽이를 돌리듯 갖고 놀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스피너의 날개를 보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얻는다는 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들도 앞다퉈 구입하고 있다.

미국의 학교들은 정작 이 장남감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도 쉴 새 없이 피짓 스피너를 돌리자 뉴욕주 일부 공립학교는 아예 금지령까지 내렸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팔린 갯수만 수백만개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산업용으로 쓰여야 할 베어링을 장난감 제조업체가 싹쓸이하면서 공구와 기계 제조업체들까지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급기야 텍사스주에서는 피짓 스피너를 갖고 놀던 소녀가 일부 조각을 삼켜 응급수술을 받아 빼내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아이의 엄마는 이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려 어린 자녀들의 경우 자칫 질식사 할 수 있다는 경고를 올렸다. 부모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이 글은 7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올 들어 갑자기 대유행이 됐지만 피짓 스피너의 탄생에는 슬픈 모성애 일화가 담겨 있다. 1997년 플로리다에 살고 있던 캐서린 해팅어는 당시 중증근무력증과 자가면역질환으로 근육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7살이던 딸을 돌봐야했지만 장난감조차 들기 어려웠던 그녀가 딸을 위해 만든 장난감이 피짓 스피너다. 딸이 혼자서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팅어는 이후 8년간 피닛 스피너의 특허를 보유했지만 연 400달러인 갱신 수수료를 지불할 돈이 없어 2005년 특허를 포기했다. 피짓 스피너 열풍이 불면서 제조사들은 떼돈을 벌고 있지만 정작 개발자인 해팅어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디즈니월드로 잘 알려진 플로리다 올랜도의 외곽 도시 윈터파크에 살고 있는 그는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발명품의 약 3%만 실제 개발자에게 돈을 벌어주고 있다”며 “많은 발명가들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도 내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이 내게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묻지만 제가 디자인한 물건을 사람들이 즐겁게 사용하고 있는 것에 기쁨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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