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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의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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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후에 보인 ‘탈권위’적 행보는 파격적이다. 청와대 관저 출근길에 시민들과 격의 없이 만나는 모습이나 경내 구내식당에 참모들과 식사한후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손에 들고 산책을 하는 모습 등도 직전 대통령들과 비교해 신선하게 비춰진다. 근접 경호를 맡은 경호원들은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한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취재해야 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일이 늘었다.

취임후 첫 주말을 앞둔 12일 오후 대언론창구인 춘추관을 통해 ‘비보’가 전해졌다. 대통령의 토요일 산행소식을 전하며,각 언론사 1명씩의 산행 희망자를 접수받은 것이다.

청와대 경내에서 시작되는 북악산 등산코스는 보안구역내에 있어서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곳이다. 토요일 휴식을 기꺼이 반납한 것은 어짜피 엠바고(보도시점유예)로 묶일 ‘대통령 말씀’보다는 비공개 등산코스를 오를 수 있다는 ‘설레임’이었다.

13일 오전 10시 30분께 약식 신원조회 등 검문을 거쳐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니 대통령이 이미 도착해 담소를 나누며 기자들의 ‘셀카’촬영에 응해주고 있었다. 이날 등산 코스는 북악산 ‘무병장수로’ 왕복 4.4㎞ 구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즐겨 찾던 곳이다.

청와대 근무 경력이 7년째라는 한 경호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너차례 찾았고,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번도 산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갑작스런 산행 배경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기간 고생한 기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격려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10년만에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등산로를 찾은 문 대통령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토요일 하루 휴식을 강권하는 참모들의 조언을 뿌리치고 산행을 결행한 것은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더 이상 미뤄두기가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등산 ‘마니아’인 문 대통령이지만 이날 산행은 힘겨워 했다. 2004년 청와대 민정수석을 마치고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라다크 코스를, 지난해 랑탕 코스 5900m를 올랐던 그다. 지난 9일 대선투표일 당일엔 투표를 마치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서울 홍은동 자택 뒷산을 찾기도 했다. 숨가빴던 대선을 거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꾸리지 못한채 시작한 업무로 체력이 바닥난 탓이다.

문 대통령은 산행중 서너차례 쉼터에서 동행한 기자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곤 했다. 기사로 쓰지도 못할 대통령의 ’말씀‘을 한 마디로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들의 취재경쟁은 산행내내 계속됐다. 청와대와 기자들은 산행에 앞서 대통령 ‘말씀’을 기사화하지 않기로 확약했다. 산행 1시간쯤 지난 11시 30분께 일반 등산객들과 합류하는 북악산 숙정문에 들어섰을때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등산객들은 경호원들이 제지할 틈도 주지않고 대통령을 에워쌌다. 문 대통령은 싫은 내색 한번없이 등산객들의 사진 촬영요구에 일일이 응하고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응대했다.

숙정문 정자에서 대통령과 기자들은 둥그렇게 둘러 앉아 20분 정도 담소 시간을 가졌다. 대통령의 진솔한 답면과 말씀을 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당초 1시간정도 예상했던 산행은 2시간 넘게 걸렸다. 시도때도 없이 이어졌던 60여명 기자의 질문세례,숙정문에서 등산객들의 격한 환영과 대통령의 응대가 하산을 더디게 해서다.

산행을 마친뒤 문 대통령과 기자들은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삼계탕으로 오찬을 했다. 대통령은 기자들과 동행한 청와대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직접 음식을 식판에 담았다.

대통령의 산행에 앞서 청와대 경호동에 비상이 걸렸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었다. 산행한 동행한 경호원은 전날 밤부터 1시간 간격으로 등산로를 확인하며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고 했다. 토요일 휴식을 반납했던 기자들은 대부분 대통령과의 산행에 만족해 했다. 기자 한명은 굳이 이날 모임을 ‘문재인 산악회’ 1회 모임이라고 명명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끝)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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