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性속의 경제史) 전염병·피임으로 급감한 로마의 인구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쾌락위해 '무자식 상팔자' 풍조만연...온갖 피임법 연구

(정화담·성풍속연구가) 로마는 제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인구 70만의 거대도시였다. 물론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한국인들이라면 70만 정도의 인구를 한적한 시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제정 로마 당시의 길거리는 이미 교차하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번잡한 도회지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 비단 현대의 후반부 들어서 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인구란 언제나 불어나기 마련이라는 고정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구의 감소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고 집권자들에게는 임신이야말로 장려해야 할 사업중의 하나였다.

인구 문제는 씨족사회의 가부장들부터 대도시와 제국의 관리자들까지 중대한 문제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출생을 장려하기 위해 이혼한 여자가 독신으로 지낼 수 있는 기한을 18개월로 못박기까지 하는 등 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었다.

인구의 증감은 하나의 파동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파동을 그려내는 것에는 실로 많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로마의 멸망을 추적하는 수많은 논문들이 있는데 이중 어떤 논문들은 로마에 번져간 전염병을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할 정도다. 실제로 천연두가 번지면서 로마시 인구의 3분의1이 죽어간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세계에서 질병이야말로 인구의 감소를 초래한 가장 심각한 원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구의 증감은 산업형태와 성풍속에 기인하는 바도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그것의 복합일 것이다.

로마 여인들은 언제나 노련하게 피임을 했다고 짐작되지만 넘쳐나는 동성애와 영아유기 등도 인구의 감소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성애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당시부터 고민거리의 하나였다. 결혼이 장려되고 해방노예들도 어엿한 시민과의 결혼이 가능했다. 이미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인구수는 로마제국을 관리하는데 충분한 인구를 공급하는데 늘 부족했다. 전쟁, 외지근무, 한번씩의 전염병 등이 모두 인구의 감소에 기여했다. 키케로는 '쾌락은 줄이되 자식은 많이'를 슬로건으로 내걸 정도였으니 인구문제는 심각한 것이었다.

조혼 풍습도 역시 인구의 감소에 기인했지만 역시 문란한 성이야말로 인구감소를 초래한 보다 본질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여인의 경우 자식이 쾌락적인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여염집 부인들조차 웬만하면 무자식 상팔자를 노래하며 온갖 종류의 피임법을 개발했고 연구했다. 심지어 후추가루를 코에 밀어놓고 재치기를 유도해 남성의 정액이 점착하지 못하도록 한다거나 일이 끝난 후에 쪼그리고 앉아 물로 씻어내는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흡착력이 있는 일종의 플러그를 자궁입구에까지 밀어 넣어 임신을 막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발달한 방법임에 틀림 없었다.

오늘의 신문 - 2024.04.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