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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대자연 로마의 낭만 체코의 중세거리…유럽의 미 모아 놓은 '발칸의 보석'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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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미니어처' 슬로베니아

유럽 여행 '종합선물세트'…이곳이 바로 동화 속 나라?
알프스 만년설 녹아 '작은 진주' 로 변신하다

로마 닮은 작은 수도 류블랴나…젊은이들 많아 언제나 생기발랄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 섬 하나…전통 나룻배 23척만 드나들어



동유럽 발칸반도에 숨은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와 그림 같은 호수, 신비로운 알프스 산맥, 그리고 중세시대의 거리가 어울려 매력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크로아티아나 체코, 오스트리아 등에 비해선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때 묻지 않았다는 나라.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유럽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나라지만 슬로베니아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동유럽의 스위스’ ‘알프스의 양지바른 곳’ ‘전원의 나라’ 등 슬로베니아의 별명만 들어봐도 어떤 나라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원래 슬로베니아 여행은 계획이 없었는데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독일 여행자가 슬로베니아를 강력 추천했다. 여행자들이 다른 여행자들을 꼬드길 때 흔히 쓰는 말을 했다.

“유럽을 단 한 번에 여행하는 방법이 있어. 그건 바로 슬로베니아에 가는 거야. 스위스 알프스의 대자연, 체코 프라하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로마의 낭만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슬로베니아야. 유럽의 온갖 아름다움을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랄까.”

며칠 뒤 나는 슬로베니아로 가는 유레일 패스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다 블레드 성의 사진을 본 뒤 슬로베니아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도시, 류블랴나

슬로베니아는 발칸반도에 숨은 듯 자리잡고 있다. 면적은 한반도 11분의 1. 대략 1000만㎢. 전라도 넓이와 비슷하다. 인구는 20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이 해체되면서 독립했다. 당시 6개 연방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에서 슬로베니아는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쌓은 부를 다른 연방국가에 평등하게 배분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에 슬로베니아는 반기를 들었고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결정했다.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어 동유럽과 발칸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를 찾는 여행자들은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발음하기가 약간 까다로운 이 도시는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지만 인구라고 해봐야 28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류블랴나는 에모나(Emona)라는 로마 도시로 출발했다. 그런 까닭인지 시 곳곳에 로마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후 15세기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통치했는데. 이때 흰색의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다.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도 그때 얻은 것이다. 1809년부터 1814년까지는 동부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려는 나폴레옹이 일시적으로 만든 일리안 주의 수도이기도 했다.

류블랴나 가운데 자리한 프레셰렌 광장은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는 기차들이 정차하는 중앙역과 가깝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여행자와 현지인들로 붐빈다. 프레셰렌이라는 이름은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인 프레셰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프레셰렌은 낭만주의의 선두주자였으며 강렬한 문장으로 유명했던 시인이다. 그가 사망한 날인 2월8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이날에는 전국적으로 그의 시를 읽는 낭송회와 콘서트, 연극 공연 등이 열린다고 하니 그에 대한 슬로베니아 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동상은 아득한 시선으로 어느 지점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 시선이 닿는 지점에는 그가 평생 사랑한 여인 율리아 프리미츠의 집이 있다. 평생 사랑했지만 신분의 차이로 함께할 수 없었던 그들을 위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라는 의미로 이렇게 동상을 배치했다고 한다.

색다른 모습 볼 수 있는 류블랴나 시장



광장 옆으로는 류블랴니차 강이 흐른다. 강 양옆으로는 바로크 양식과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축물이 즐비하다. 풍경은 평화롭고 여유롭기만 하다. 강 옆으로는 레스토랑과 카페, 서점 등이 늘어서 있다. 소란스럽지 않아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좋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트리플교(Triple Bridge)가 나온다. 슬로베니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요제 플레치니크가 설계한 것으로 류블랴나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체코 프라하 성의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애초에 북서유럽과 남동유럽 국가들의 왕래를 위해 중세시대에 다리를 놓은 이후 1929~1932년에 두 개의 다리가 더 놓이면서 트리플교가 만들어졌다.

트리플교에서 용의 다리로 가는 강가에 류블랴나 중앙시장이 자리한다. 이른 아침에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활력과 생기로 시장은 떠들썩하다. 싱그러운 과일과 꽃, 채소와 치즈로 가득 찬 시장은 슬로베니아의 또 다른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다녀도, 길을 잃어도 조금만 걸으면 지나간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러니 길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골목을 산책하는, 다정해 보이는 부부와 수레 가득 꽃을 담아 팔고 있는 멋진 반백의 할아버지. 모퉁이 빵가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거리에는 유독 젊은이들이 많은데 대부분 류블랴나 대학생이라고 한다. 2만명이나 된다. 류블랴나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도시의 이름이 왜 류블랴나인지 이해가 간다. 슬로베니아어로 류블랴나는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티볼리 공원에 닿는다. 류블랴나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수많은 조각상과 함께 곳곳에 분수대가 있다. 공원에는 각종 스포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슬로베니아 국가대표 선수들도 이곳에서 연습한다고 한다.

류블랴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류블랴나 성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뒤 17세기 초에 재건됐다. 류블랴나 성은 류블랴나 시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동안 요새, 감옥,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류블랴나 사람들이 결혼식장으로 가장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에 오르면 장난감 도시 같은 류블랴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달력에서 오려낸 동화 같은 풍경, 블레드 호수



알프스 산은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공유하는 산이다. 알프스하면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절반 이상을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지분을 갖고 있고 슬로베니아도 발을 걸치고 있다. 줄리안 알프스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북서부 산악지대다. 트리글라브 등 2000m 이상 고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6월까지도 잔설이 남아 있을 정도다.

블레드 호수는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다. 둘레 6㎞의 작은 호수지만 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졌다.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그림 같다. 푸른 물비늘을 일으키며 햇살을 반사하는 호수와 그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은 방금 달력에서 오려낸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블레드 호수가 유명한 건 블레드 호수에 떠 있는 블레드섬 때문이다. 이 자그마한 섬은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한 섬으로 전통 나룻배 ‘플레타나’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블레드 호수엔 플레타나가 23척뿐이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 때부터 그랬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블레드 호수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고, 딱 23척의 배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 숫자가 200년 넘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뱃사공 일은 가업으로만 전해지고 남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 보면 블레드섬에 닿는다. 99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쁜 바로크식 교회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1000년도 더 된 교회다. 성당은 결혼식 장소로 애용되는데 결혼식은 못 올려도 성당 내부에 있는 ‘행복의 종’을 울리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종을 울리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블레드섬에는 종소리가 항상 울려 퍼진다.

‘유럽의 미니어처’ 다양한 모습 볼 수 있어

호숫가 절벽 위에는 블레드의 상징인 블레드 성이 자리한다.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한 모습이 동화 속에나 나옴 직하다. 마법에 걸려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성은 800년 이상 남부 티롤의 주교가 앉은 의자가 있던 성당이다.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족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성 한쪽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주로 검과 갑옷 등이 전시돼 있다.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와인을 시음해볼 수도 있다. 옛날 중세 복장을 한 와인 소믈리에가 반갑게 맞아준다. 슬로베니아 동쪽의 와인지대는 고대부터 중요한 와인 공급지였다고 한다. 호숫가에는 옛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인 티토가 사용한 호숫가 별장 ‘호텔빌라블레드’가 있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과 호텔들을 국가별로 선별한 가이드북, ‘를레 에 & 샤토’ 멤버에도 가입돼 있는 이곳은 김일성 북한 주석이 14일 동안이나 머물고 갔을 만큼 멋진 풍광과 아늑함을 자랑한다.

슬로베니아를 일컫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유럽의 미니어처’다. 이 작은 나라 안에 유럽의 모든 것이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블레드 호수에서 2시간만 북쪽으로 가면 피란 지역.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산맥의 주름이 두터워지고 침엽수림의 녹색 그늘이 깊어진다. 전형적인 알프스의 풍광이다. 고향이 피란 지역인 가이드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레스체라는 오지 마을이 있었는데, 전엔 ‘세상의 끝’으로 불린 외진 곳이다. 이 마을엔 돈 많고 장난 좋아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기차를 통째로 빌려 타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내가 아프리카 왕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난은 너무 잘 먹혀서 지방 신문에도 났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역은 맞는 것 같다.

슬로베니아=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정보

슬로베니아로 가는 직항은 없다. 독일 뮌헨공항을 거쳐 아드리아에어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저렴하다. 블레드는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 등 인근 국가에서 도착하고 출발하는 국제선 전용 기차역이 따로 있다. 자세한 정보는 유레일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중부 유럽과 발칸반도를 잇는 주요 열차편도 류블랴나를 거쳐 간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비자는 필요 없다. 통용되는 화폐는 유로화.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블레드의 그랜드호텔토플리체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이 빼어나다. 류블랴나의 센트럴호텔은 기차역에서 가깝다. 시내 관광의 중심인 프레셰르노브 광장도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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