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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 독려를 위한 금전적 보상은 비윤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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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근 바이오헬스부 기자)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A씨의 뇌사 판정 소식을 알리기 위해 친형 B씨한테 연락을 했어요. A씨와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다는 B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비 걱정부터 하더군요.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것 같았어요. B씨에게 장기 기증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생 분의 장기를 기증하면 국가에서 병원비와 장례지원금이 나온다’고 말했어요. B씨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하더군요.”

오랫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장기 이식 사례들을 지켜봐온 한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의 말입니다. 지난달 정부는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의 유가족에게 180만원씩 지급하던 위로금을 없앴습니다.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훼손할 우려가 있고 장기매매로 확대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180만원이었던 장례지원금을 360만원으로 늘려 유가족이 결과적으로 받는 금액은 이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위로금이 장례지원금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라며 “정부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해가려고 편법을 쓴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위로금뿐만 아니라 장례지원금, 진료비 지원금도 전부 없애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종원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기 기증 사실을 숨기려는 유가족들도 적지 않다”며 “금전적인 유인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만 장기를 기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위로금을 폐지하면 장기 기증 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장기 기증 건수가 이식 대기자수에 비해 가뜩이나 부족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 이식대기자 수는 3만286명이었지만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 수는 573명이었습니다.

의료현장에서도 지원을 모두 폐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장기기증원 관계자는 “장기 기증 절차에 관여한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5년 장기 기증에 동의한 뇌사추정자 537명 중 43%인 230명이 경제적 사유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에 뇌사자 장기 기증 관련 의료진 2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91%의 응답자가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면 기증 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위로금을 폐지하면서 장기적으로 금전적 보상을 모두 폐지하고 기증자 예우 사업 등 새로운 지원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기증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생명나눔 추모공원을 설립하고 국가가 장례지원서비스를 직접 수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실과 도덕 사이의 딜레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끝) /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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