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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이동하는 '환율조작국 타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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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트럼프 정부의 ‘환율조작국 타깃’이 바뀌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환율조작국 지정이 유력했던 중국과 일본 대신 한국과 대만 등이 ‘부상’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초 트럼프 정부가 강조했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와 같은 ‘양적 지표’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달러 매수 개입 규모와 경상수지 흑자 비율 등 ‘질적’ 지표가 강조되면서 미 정부 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미국 외교협회(CFR) 블로그에는 모리스 그린버그센터의 브래드 세스터 선임연구원이 쓴 “한국이 사실상 환율 목표범위(target zone)를 운용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제목은 의문문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논거로 가득차 있다.

한국 정부가 원달러 환율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설정해 원화가 지나치게 약세를 보이면 달러를 풀고, 강세를 보이면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을 단행해 왔다는 주장이다(그래픽 참조).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가 환율 허용 범위를 2010년 1월부터 2014년 말까지는 달러당 1050원~1075원대로, 이후에는 이보다 낮은(원화 약세) 구간인 달러당 1100~1200원선을 설정해 운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원화 강세를 막기 위해 GDP의 3.5%에 달하는 120억달러 규모의 매수 개입을, 4분기에는 원화 약세를 차단하기 위해 GDP의 2.5% 수준인 80억달러의 매도 개입을 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서는 트럼프 정부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도록 개입을 자제하면서 원화 강세를 유도하는 미세 조정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적정한 가격수준에 외환거래를 했느냐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아니다”라고 끝을 맺으며 한국의 환율조작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그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재무부에서 부차관보라는 직책을 갖고 활동했던 이코노미스트라는 점이다. 자칫 미 재무부가 4월 내놓을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외환당국의 우려다.

반면 세스터 연구원은 일본 등 선진국에 대해서는 “이들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외환시장 개입을 독립된 정책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면죄부를 줬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부터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한 시장 개입에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쓰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위안화 절하를 부추기는 환율조작국 지정을 강행하는 자충수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환시장의 대체적인 컨센서스다.

일부에서는 최근 미 정부 내 기류 변화의 배경으로 일본 정부의 ‘물밑 플레이’ 가능성을 지적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트럼프 정부가 타깃을 잘못 잡았다”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FT 도쿄지국장이 쓴 이 기사는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지목하고 있다.

기사는 일본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이 3%에 불과한 반면 한국(8%)과 대만(15%), 싱가포르(19%)는 이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근거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세스터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뉴욕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일본이 광범위한 대미 네트워크와 외교력을 활용해 환율조작과 관련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려는 시도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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