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라이프스타일

"예술품 복제 허용해야"vs"작가의 창작의지 꺾어"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양병훈 문화부 기자) 예술작품 복제를 폭넓게 허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복제를 엄격하게 금지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복제품 거래를 허용하면 원작을 구입할 경제력이나 의사가 없는 사람들도 작품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나 “예술품 거래 시장의 질서가 흐트러질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기문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문화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위작 예술품은 해로운가’ 발제문을 통해 “복제품은 예술 작품을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향유의 기회를 줘 사회적 후생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교수는 복제 예술품에 대한 소비자 효용함수를 통해 원작 시장만 있는 경우와 복제품 시장이 병존하는 경우를 각각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부터 원작품을 소비할 의사가 없었던 사람들이 복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원작자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원작자 사망 후 70년)이 지나지 않은 예술작품을 원작자의 허락 없이 복제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의 무분별한 복제가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죠. 정 교수는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센티브는 경제적 보상보다는 인지도 또는 평판”이라며 “논문을 쓸 때 참고문헌을 밝히듯 예술품을 복제할 때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예술 인용제도’로 부정적 효과를 보완할 수 있다”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술 인용제도는 원작자의 평판이나 명성을 높여 간접적으로 원작자의 미래 소득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주장은 근본적으로 원작과 위작 간 구분이 모호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정 교수도 “원작에는 위작이 흉내낼 수 없는 아우라(후광)가 있다”는 예술계의 오랜 명제에 회의적인 입장입다. 때문에 원본만 허용하는 ‘독점시장’ 대신 복제도 널리 허용하는 ‘완전경쟁 시장’을 만드는 게 낫다는 거죠. 김재범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논란이 인 조영남씨 사례처럼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은 일부만 작업하고 나머지는 제자가 그리도록 하고 있다”며 “제자가 그림을 거의 다 그린 뒤에 서명만 스승이 하면 그건 스승의 진품이 되고 서명도 제자가 하면 위작이 된다. 이런 구분이 타당한지 애매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예술작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관계자는 “김환기 작가의 그림을 대중예술 브랜드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복제해 판매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김 작가의 진품 거래가 위축되는 건 아니다”라며 “예술작품 대중화를 통해 시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술가들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윤리 관념과 위배된다”, “예술품 거래비용을 증가시켜 진품 가격의 상승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에서입니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작품의 퀄리티만 보고 그게 진품인지 가품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예술작품 복제 허용이 현실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미술평론가는 “복제품이 많이 거래되면 사람들이 굳이 진품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작가에게 경제적 인센티브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현실을 잘 모르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끝) / hun@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