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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재상 처칠 쓴 외계생명체 과학에세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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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태 IT과학부 기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외계인 존재 가능성을 언급한 에세이가 발견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5일(현지시간) 처칠 전 총리가 태양계 바깥에 있는 외계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비공개 원고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타자기로 작성한 11쪽 분량의 이 원고는 지난해 미국 미주리주 풀턴의 웨스트민스터대 국립처칠박물관에서 발견됐다.

유럽 전체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1939년 처음 작성된 글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50년대 내용이 추가됐다. 처칠은 1965년 숨을 거둘 때까지 원고를 출판하지는 않았다. 원고는 국립처칠박물관에 보내진 뒤 한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박물관에 신임 관장이 취임하면서 수장고에 있던 원고를 발견하고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마리오 리비오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연구원에게 내용 분석을 맡겼다.

네이처가 보도한 리비오 박사의 분석 내용을 살펴보면 처칠은 현대 과학 연구에 관해 높은 식견과 탁월한 통찰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칠은 자신의 원고에서 “생명체가 번식하고 증식하려면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며 생명현상에서 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만에 하나 외계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해당 행성의 기온이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처음 태양계 바깥에서 외계 행성을 발견한 건 처칠이 이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 49년이 흐른 1988년에 이르러서다. 실제 외계 행성이 발견된 시점보다 반세기 전에 이미 외계 생명체 연구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문제를 깊이 고민했던 것이다. 과학계는 지금도 허블 우주망원경을 동원해 태양계 바깥에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외계 행성 탐색에 나서고 있다.

처칠은 주로 정치가와 웅변가, 역사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젊은 시절에는 유명한 과학기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1896 인도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진화론 창시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물리학 입문서를 탐독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진화와 세포에 대한 글을 신문과 잡지에 투고하기도 했다. 그는 1931년 시사잡지 스트랜드에 기고한 향후 50년이란 제목의 글에서 물에 들어 있는 수소 원자를 이용해 오늘날 핵융합으로 불리는 에너지를 얻을 것으로 예측했다.

처칠의 글은 과학적 사고를 도외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되면서 유독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가 중국의 음모일뿐이라며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데 이어 백신 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입장에 지지를 보냈다. 세계적으로 지구환경 보전에 이바지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환경 감시 예산을 삭감하고 오히려 미국의 힘과 우선주의를 과시하려는 우주개발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리비오 연구원은 “오늘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과학을 피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지도자로서 심오한 분야까지 고심했던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남긴 결론은 자신을 문명인으로 부르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만이 생각하는 생명체가 살아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받아들일 만큼 우리 문명이 성공했다고 감동하지는 않는다.”(끝)/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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