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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수층은 안희정을 궁금해할까…선거와 브랜드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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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주변에서 안희정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흔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물어보는 목소리에 반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긍정적 호기심 같은 게 묻어났습니다.

왜 이들이 안희정을 궁금해할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무대에서 내려간 대선정국에서 갑자기 튀어오른 그의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얘기를 잠깐 해보려 합니다. 브랜드에 대한 짧은 생각도 같이 담아봤습니다.

◆파충류의 뇌

보수층은 안희정을 가깝다고 느끼는 것 같다. 현안에 대한 그의 발언이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하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는 그는 "박정희를 평가하면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드배치는 한미군사동맹과 관련한 합의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용 불구속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이기 때문에 그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는 보수층이 갖고 있는 생각과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 그들은 심리적 거리가 안희정과 가깝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가까움. 이는 정치와 브랜드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대 심리학의 연구결과는 이를 증명했다. 투표할 때 우리를 움직이는 뇌는 인간의 논리 및 이성을 관장하는 뇌가 아니라, 생존 및 본능과 관련된 파충류의 뇌라는 것을. 즉 무의식은 투표를 생존의 문제로 본다는 얘기다. 나와 가까운 사람,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사람을 뽑는게 선거의 심리학이다.

보수는 길을 잃었다. 다음 선거의 전망도 밝지 않다. 야당이 대통령직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서 본능적으로 보수층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야당 후보는 많지 않다. 안희정에 대한 보수층의 관심을 1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숨겨진 선거에 대한 본능이다.

선거뿐 아니라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따듯한 브랜드, 가까운 브랜드를 찾는다. 가격과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을때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브랜드를 선택한다. 요즘은 이것마저 넘어선다. 가격이 좀 비싸도, 소비자들이 품고 있는 가치와 맞는 브랜드를 찾는다. 탐스 같은 브랜드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바나 초원에서 시작된 인류의 뇌는 본능적으로 맹수와 우군을 가려내는 직관을 갖게 됐다. 현대에 와서는 본능적으로 브랜드를 이런 기준으로 나눠서 대하기 시작했다는 게 진화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신선함

사람들은 식상한 것을 싫어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정치의 중심 워싱턴 주변에서 벗어나 있던 사람이 당선된 사례가 수두룩 하다. 가깝게는 버락 오바마, 그 이전에는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이 모두 그런 케이스다. 트럼프도 그런 사례에 속하는데 왠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신선하다는 말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제외한 것으로 하겠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노무현도 이명박도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가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면에서 안희정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좌파의 이념으로 덧칠된 이미지가 아니다. 한 보수진영 인사는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합리적인 듯 하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게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 다르다.” 이는 단순한 차별성이 아니라 결정적 차별화 포인트다.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이란 표현은 한국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은 극단적 이분법의 사회다. 선진국들이 위기를 돌파하는데 활용했던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해 보인다. 끝장 토론은 결국 싸움이 된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워야 하지만, 가슴도 뜨겁고 머리도 뜨거운 탓이다. 이런 사회에서 보수에서 보기에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야당 후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신선함이다.

◆시류에 휩쓸지 않는 핵심가치

안희정이 민주당 지지자들 일부를 뜨악하게 했던 발언이 또 하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그가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이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 어쩌면 안희정 지지율 상승의 중요한 포인트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랜기간 고민했다. 노무현 정부때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했다. 현대 민주주의는 합의를 통해 발전해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그냥 버려지는 사회는 지속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리고 승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십년째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후임자가 전임자를 어떻게 해서든 몰락시켜야 하는,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어야 사는 한국의 정치풍토도 그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의 결과가 줄줄이 민주당 다른 후보와는 차별화된 발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오는데까지 그는 남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신의 고민을 이어갔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요즘 가장 중시하는 단어가 "오픈 마인드"다. 다름을 인정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사회.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오랜기간 숙성된 고민이 하나 하나의 발언으로 나오고, 어느덧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끔씩 우리는 2등 브랜드의 무리한 시도를 본다. 1등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다 추락한 2등의 사례들 말이다. 안희정의 사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치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고, 이를 흔들리지 않고 지속시키는 것. 그것이 추격자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라는 전설적 광고로 허츠를 추격한 에이비스의 사례가 문득 떠오른다.

◆실용성

또다른 안희정의 가치는 실용성이다. 사드배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안희정이 처음부터 사드배치에 찬성했을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삶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보면 초기에 그는 마음속으로 반대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돌아섰다. 왜일까.

일개 정치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철학을 희생한 것일까? 그렇게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 합의에 대한 존중이라는 그의 철학뿐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탄핵이 인용되고 누가 대통령이 됐다고 가정해 보면 너무나 분명한 결론이다. 다음은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사드를 반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공약대로 반대 입장을 밝힌다. 미국은 약속을 어긴 한국에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 더더군다 미국의 현재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미국적 대통령이 아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오바마는 케냐, 스티브 잡스는 레바논,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 이민자의 후손이다. 이런 나라에서 이민을 막겠다고 나선게 트럼프다.

한국이 사드를 반대한다면 그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보복을 할 것임은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그럼 국내에서는 한편에서는 들고 일어날 것이다. 사드뿐 아니라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을 싸잡아 공격하게 된다. 사드 때문에 집권초기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져들게 된다. 다른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 길을 가야할 것인가.

안희정의 실용주의는 이런 고려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대통령이 되고 상황을 봐서 돌아서면 된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사고방식에 치를 떤다. 선거때 많은 후보들이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돌아다니면 이런 저런 것을 주겠다고 공약한다. 지키기도 힘든 공약을. 그는 이런 것이 싫다고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정치’, 그것이 정치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과거 지지자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말을 거리낌없이 해내는 이면에는 이런 실용주의가 깔려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 원로는 이런 말을 했다. “개혁은 물흐르듯 가야한다. 개혁의 대상이 장벽을 쌓는 순간 개혁이 아닌 전쟁으로 비화한다.”

안희정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쉽지 않은 미래

안희정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기사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수없이 많다. 당내 경선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연정을 포함한 그의 정책은 민주당 골수 지지자들이 싫어할 만한 정책이다. 게다가 이들은 10년 보수정권의 정책을 모조리 부정해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쌓여 있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진정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를 지탱해줄 사람들도 부족해 보인다. 그의 경제교사였던 조윤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문재인 캠프로 갔다. 문재인은 이미 예비내각까지 보여주며 집권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처럼 이런 것 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게 두번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의 말대로 모든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들을 그의 곁에 모으지 못하면 사람들은 의심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인수위를 거치지 않고 험난한 결정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숙제는 그의 단어 사용법이다. 고민이 깊었던 그의 단어 사용은 추상적이다. 뭔가를 말하려는지 이해는 가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노무현의 적통이지만,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어법을 사용한다. 대중은 그의 지지율이 20%가 넘는 순간 그의 약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리더십 전문가인 워렌 베니스의 말로 글을 맺는다.

“리더는 독창적이되 실현가능한 비전을 가진 실용주의적 몽상가다.”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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