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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사' 임명하는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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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국제부 기자) 대사(大使). 자기 국가를 대표해 파견국과 외교 교섭을 하는 상주외교사절단의 우두머리입니다.

하지만 국가 수반이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지금, 대사의 교섭 대상이 국가로 좁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거대 기업을 상대로 엄포를 놓는 것도 결국 기업 투자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입니다. ‘비즈니스 외교’가 대세로 자리잡은 가운데 현지 기업과의 접촉이 수월한 대사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덴마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보기술(IT) 기업과의 접촉을 전담하는 ‘디지털 대사’를 임명키로 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안데르스 사무엘슨 덴마크 외교장관은 27일(현지시간)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새로운 국가 형태가 돼 가고 있고, 우리는 이에 대처해야 한다”며 임명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는 “앞으로 구글과의 양자간 관계는 그리스와의 외교관계 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전통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들보다 미국계 IT 기업들이 훨씬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조치입니다. 실제로 애플과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6420억달러, 5750억달러로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보다 훨씬 크죠.

덴마크의 디지털 대사는 이들 기업과 관계를 유지하는 업무를 포괄적으로 담당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대사는 본국에 머무르면서 세계 IT 기업과의 ‘연락책’이 될 것이라고 사무엘슨 장관은 밝혔습니다.

덴마크는 몇 해 전부터 이미 세계 IT 기업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지난주 덴마크 오덴세에 데이터센터를 신설키로 했습니다. 덴마크 외교부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페이스북과 지난 3년간 막후에서 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덴마크에서 외국 기업 수는 전체 기업의 1%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덴마크 전체 일자리의 20%를 만들어내고 있죠.

외교부 투자기관인 ‘인베스트 인 덴마크’도 애플과 3년 동안 협력, 2015년에 비보르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키로 합의했습니다. 최재철 주덴마크대사는 “정보화 산업국가를 지향하는 덴마크로서는 IT 기업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런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 세계에서 앞서가는 조치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디지털 대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시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여겨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끝) / jwp@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