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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고성·천재 건축가·신의 물방울…스페인 카탈루냐 '3색 매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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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

'뼈로 된 집'과 성가족성당
바르셀로나 곳곳에 가우디 걸작의 유혹

13세기 성안에는 스페인 최대 개인도서관…지하실엔 달리가 사랑한 스파클링 와인이…

생활과 예술이 밀접하게 연결된 곳
가우디가 꿈꿨던천상의 세계는 아직 건설 중…
수 세기를 관통한 시간여행을 떠나다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 지방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바다, 예술, 요리 등 무엇을 주제로 해도 그들의 꼿꼿한 자부심과 활기찬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매력을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단연 건축이다. 중세의 대성당에서부터 근대의 독창적인 저택까지 건축예술과 문화가 일상에 깃들어 있다. 근교로 나가면 중세의 성도 만날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한 와인 생산지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생활이 예술과 밀접하게 이어지는 곳, 카탈루냐로 떠났다.

중세시대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딕 지구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자치주 중 하나인 카탈루냐에 속한 도시다. 한반도 2.5배 면적(50만㎢)에 이르는 스페인에선 4개 공식 언어(카탈루냐어, 카스티야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와 7개의 방언이 쓰이고 17개 자치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주류를 이루는 카스티야와는 문화 및 언어가 달라 꽤 색다르게 다가온다.

바르셀로나 여행의 구심점인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하자 ‘아, 진짜 바르셀로나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광장 주변에선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가 병기된 간판, 세계적인 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은 백발노인 등이 보였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중세 유적을 고이 간직한 구시가의 중앙에 있는 고딕 지구였다. 13~15세기에 지은 건축물과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 시청사 등이 있는 곳이다.



고딕지구에 한 블록씩 다가갈수록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늘어나고, 공연 중인 예술가들이 시선을 끈다. 버블아티스트가 띄운 비눗방울을 바라보다가 저 너머 대성당에 시선이 꽂혔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고딕지구에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1298년에 착공해 150년 만인 1448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 석조건물의 위용이 드러난다. 정면의 현관은 1408년에 만든 설계도에 따라 500여년 후인 1913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중앙 성전의 드높은 아치와 제단이 고요한 빛을 발한다. 제단 아래에 놓인 바르셀로나 수호 성녀의 석관 앞에선 수많은 촛불이 영롱함을 더해 신성함을 느끼게 한다.

대성당 옆으로는 옛 왕궁이 이어진다. 백작과 왕족이 머물던 곳에 지금은 박물관들이 들어서 있다. 중세 고미술품부터 근대 생활용품까지 볼 수 있는 프레데릭 마레 박물관(Museu Frederic Mares)은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중세 시대 종교 예술품과 미술 조각품을 둘러보고 위층으로 올라가니 19세기의 가구, 식기, 장식품이 있다. 갖가지 담뱃대, 옛날 안경들, 기묘한 장난감들에 심취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남긴 세기의 건축물



중세 시대 풍경을 뒤로하고 카탈루냐 광장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대 건축의 거장인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기 위해서다. 독창적이고 경이로운 그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 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들른 곳은 카사 바트요(Casa Batllo)다. 가우디가 당대의 실업가 바트요 카사노바스의 집을 개축하면서 바다를 주제로 작업한 건물이다. 외관을 보니 다양한 빛깔의 유리 모자이크가 햇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한낮에는 눈이 부셔 건물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다. 곡선을 그리는 벽면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 집을 ‘뼈로 된 집’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처럼 해골과 뼈를 모아 지은 듯한 외관이 매우 기묘하다.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맞은편에 있는 카사밀라(Casa Mila)를 만났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채석장)’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건물은 높은 암벽에 반듯한 구멍들을 새긴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모서리가 없이 출렁이는 듯한 형상이 이채롭다. 중세 기사 모습의 굴뚝은 마치 도시를 굽어보는 것만 같다.

가우디 건축의 절정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La Sagrada Familia)에서 볼 수 있다. 믿을 수 없이 거대하고 무섭도록 정교한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크고 작은 조각상들로 묘사된 예수의 삶을 눈으로 더듬다 보면 그 세밀함에 현기증마저 일어난다. 가우디는 스승이 착공한 성당 건축을 이어받아 반평생 힘을 쏟았으나 안타깝게도 다 마치지 못하고 1926년에 세상을 떠났다. 예수의 일생을 표현한 세 개의 파사드(Facade·정면부) 중 가우디가 만든 것은 ‘탄생의 파사드’다. 나머지 ‘수난의 파사드’는 이후에 완성됐고, 마지막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도 건설 중이다. 가우디가 꿈꿨던 천상의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성이 있는 페렐라다



바르셀로나 근교로 나가면 카탈루냐 지방의 성(城)들을 만날 수 있다. 북동쪽으로 140㎞ 떨어진 엠포르다(Emporda) 지역의 페렐라다(Perelada) 마을로 향했다. 마을의 상징인 페렐라다 성 내부에는 수도원, 교회, 도서관이 있고, 와이너리에서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즐겨 마시던 와인도 생산한다.



페렐라다 성의 직원 리디아가 길을 안내했다. “중세시대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로카베르티 자작 가문이 마을 중심부에 성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1285년 프랑스 침공 때 화재를 입어 마을 외곽에 다시 지었죠. 1923년부터 현 소유주인 마테우 가문이 성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황새들이 노니는 연못을 지나자 두 개의 탑이 솟은 작은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담쟁이 넝쿨이 뒤덮은 붉은 성은 동화책에서 나올 듯하다. 진짜 볼거리는 성 뒤쪽의 도서관이라며 리디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문을 열자마자 천장을 뚫을 듯 벽면을 가득 채운 고서적들이 눈을 압도한다. 8만권에 달하는 서적을 보유한 스페인 최대의 개인 도서관이다. 양피지 문서, 미사 전례서, 초기 활자 간행본, 고딕 필사본 등의 고문서와 함께 약 1000가지의 돈키호테 판본을 보유하고 있다. 소중히 간직된 수 세기의 서적들을 보니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마테우 가문 사람의 문학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와 닿았다.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한 와인 생산지

호수와 라벤더 밭을 지나 지하저장고로 향했다. 리디아는 1923년에 성을 산 미구엘 마테우는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성의 부속건물인 수도원은 14세기부터 와인을 만든 역사를 갖고 있다. 그는 이 전통을 잇기 위해 가족과 함께 와인 사업에 뛰어들어 짧은 시간 안에 유명한 와이너리로 키웠다.



페렐라다 와이너리에서는 이 지역 전통 방식으로 스페인의 발포성 와인인 카바(cava)를 생산한다. 일반 레드 와인도 만들지만 카바가 좀 더 유명하다. 지하저장고에 들어서자 효모 향과 오크 향이 풍겨온다. 수천 개의 참나무통이 늘어선 셀러 끝에는 병에서 2차 발효를 마친 카바들이 경사진 나무판에 꽂혀 있다. “거꾸로 꽂아둔 병들을 정기적으로 돌려주면 병목으로 찌꺼기가 조금씩 모인답니다. 마지막에 찌꺼기를 제거하고 다시 밀봉하면 최고급 카바가 탄생하죠.”

저장고에서 나와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했던 ‘토레 갈라테아 카바 브루트 로사도’를 맛봤다. 한국에서도 ‘TG 달리 에디션’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얻은 로제 스파클링 와인이다. 사실 토레 갈라테아는 달리가 여생을 보낸 집의 이름이다. 달리는 말년에 항상 그의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이 투명한 핑크빛 와인을 권했다고 한다.

달리와 마테우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고 그 편지들은 지금도 페렐라다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페렐라다 와이너리는 그 특별한 인연을 기리기 위해 이 와인에 그가 살던 집의 이름을 붙이고 병 레이블에 그의 드로잉과 서체를 담았다. 투명한 체리색 와인에서 섬세하게 피어오르는 거품이 달리의 그림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 부드러운 풍미를 가만히 입안에 머금었다. 수 세기를 관통한 듯 지나온 카탈루냐에서의 시간을 되새기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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