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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공화당의 금리공식 이번엔 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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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국제부 기자)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하우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보장된 시대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그의 조언가들이 모두 ‘거짓 경제’라며 재닛 옐런 미 중앙은행(Fed) 의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데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영국 중앙은행(BoE)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며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재량보다 준칙에 의한 통화정책을 주장하는 존 테일러 교수가 차기 Fed 의장에 거론되면서 그 반대의견도 나오고 있긴 합니다.

독립성 개념이 자리잡은 이후 정치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준 적은 없었을까요. 집권당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에 따라 경기가 바뀌면 중앙은행은 이에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요. Fed를 예로 들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금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절차상 독립적이지만 신중하게 정치적 상황을 검토해 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 미국 포린어페어스에 에두아르도 캄파넬라라는 이코노미스트가 쓴 ‘Democrats, Republicans, and Fed’라는 글을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캄파넬라는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우니크레디트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문 이코노미스트입니다.

그래프에 나온 것처럼 Fed의 기준금리로 쓰이는 연방기금금리의 방향은 집권당에 따라 일관되게 변했습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의 임기가 끝날 때쯤 연방기금금리는 백악관에 입성할 때보다 항상 높았죠. 반대로 공화당 출신 대통령(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이 백악관에 들어간 이후로는 연방기금금리가 떨어졌습니다.

공화당 대통령들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투표권을 가진 FOMC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금리를 내리라고 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보다는 집권당이 바뀌면서 경제정책이 변하기 때문에 Fed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캄파넬라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으로 Fed 의장들이 자신을 임명한 정당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옐런의 전임자들(아서 번즈,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은 모두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었죠.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은 번즈 Fed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금리를 인하하라고 요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반면 전후 역대 Fed 의장 가운데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폴 볼커 밖에 없습니다. 볼커가 임명됐을 때 카터 대통령은 퇴임을 1년 앞두고 있었지만 Fed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볼커는 반대로 당시 점차 심해지던 스태그플레이션에 맞서 연방기금금리를 무려 7% 포인트 올려버렸죠.

하지만 이 얘기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분석이고, 그보단 집권할 당시의 거시경제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프린스턴대 교수인 앨런 블라인더와 마크 왓슨은 1949년 이후 불황이 나타난 49개 분기 중 겨우 8개 분기만 민주당 집권기에 속했고, 나머지는 전부 공화당 집권기에 몰렸다고 발표했습니다. 특정 분기의 불황에 대해 어느 쪽이 책임져야 하는지 특정하긴 어렵습니다. 공화당이 집권한 직후 처음 몇개월간 나타난 불황은 민주당 대통령들의 ‘유산’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공화당 집권기의 불황은 공화당의 책임이라는 재반론이 나옵니다. 캄파넬라는 대부분의 거시경제학적 측정법에 따르면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지난 70년간 공화당 대통령들보다 나은 성적을 냈다고 주장합니다.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민주당 행정부 때 4.5%에 가까운 반면 공화당 행정부 밑에선 2.5%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이 수치도 이전 행정부의 실책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 지표를 고려해도 민주당이 더 나았다고 캄파넬라는 얘기합니다. 예컨대 S&P500 지수는 민주당 때 평균 8.4% 오른 반면 공화당 땐 겨우 2.7% 올랐습니다. 대통령 임기말 실업률은 공화당 때 평균 1.5%였지만 민주당 땐 그보다 0.7%포인트 낮았습니다.

캄파넬라는 이 현상도 사례를 들어 뒷받침합니다. 예컨대 빌 클린턴은 낮은 세율, 늘어난 국방비, 이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로 특정되는 공화당 집권기 이후 공공재정을 복구해냅니다. 반면 스태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데 실패한 닉슨 대통령의 정책은 브레턴우즈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죠. 자업자득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의 유산도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린든 존슨은 인플레이션율이 치솟을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뒤 늦게서야 긴축정책을 펼쳤고, 결국 고인플레이션 현상은 닉슨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 시기에 시작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로 이어지면서 경기침체를 유발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닷컴 거품과 9·11 테러를 수습해야 했고요.

반론은 또 있습니다. 운이 나빴다는 거죠. 경기 확장이 지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후퇴하는 국면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공화당 대통령들은 민주당 대통령들의 집권기 내내 지속된 호황이 끝날 무렵 집권했다는 것입니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땐 빌 클린턴 대통령 임기 10년간 호황이 지속된 이후였죠. 닉슨도 8년 간의 호황 뒤에야 집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 혹은 공화당 대통령들이 처한 상황과 처방에 어땠냐는 것입니다. 트럼프 당선자는 닉슨 대통령처럼 똑같이 8년 간의 호황 뒤에 집권할 예정이라고 캄파넬라는 주장합니다.

캄파넬라는 여기에 보호무역주의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심각한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세제안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책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성격 때문에 시장은 불안해질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곧 불황 국면에 직면할 수 있고, 트럼프의 경제정책 때문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캄파넬라의 주장에 따르면 공화당 집권기의 전례를 따라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자신도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거부하는 발언을 했으니까요.

차기 Fed 의장으로 ‘테일러 준칙’을 만든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거론되면서 금리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테일러 준칙 하에서 적정금리 수준은 지금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는단 가정 하에 트럼프 당선자가 전례를 깨고 금리인상을 용인할 수 있을지. 그러면서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해내는 ‘민주당’스러운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끝)/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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