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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만큼 뜨거운 정치인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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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진 정치부 기자) 2016년 정치권은 연말 탄핵 정국에 휩싸이면서 어느때보다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많이 받았던 한해였습니다. 정치권 만큼이나 관심을 받았던게 바로 정치인들의 책이었는데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전면 금지되면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1회성 이벤트를 위한 정치인들의 책쓰기는 거의 사라진 대신 책 내용을 통해 정치권 이슈를 몰아가며 흥행에 성공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던 책은 뭐니뭐니해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일 겁니다. 송 전 장관은 이 책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과정 논란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07년 UN 북한 인권문제 규탄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권하기로 최종 결정하기 앞서 북한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는 내용이 책에 담기면서 정치권내 친노무현계 종북 파장과 새누리당의 파상공세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파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조용히 묻히기도 했지만 최순실이 아니었으면 연말까지 정치권 이슈를 이끌 소재였던건 분명해 보입니다. 총 7000여권이 팔리며 만들어진 인세 3000만원을 최근 송 전 장관은 비핵화 연구에 써달라며 자신이 총장으로 근무하는 북한대학원대에 쾌척했습니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쓴 ‘강진일기’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책이었습니다. 내용보다는 사실상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 신호탄을 알리는 책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손 전 고문은 책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북콘서트’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위한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네번째 저서인 ‘콜라보네이션’을 펴냈는데요. 콜라보네이션은 ‘국민이 참여해 이끄는 나라’란 의미로 ‘협력(Collaboration)’과 ‘국가(Nation)’를 합성한 단어로 자신의 대선을 향한 청사진을 담았습니다. 특히 충남지사 재직 6년 동안의 도정활동으로 쌓은 지방분권에 대한 철학과 대권 주자로서의 포부를 선보이며 조용히 이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과거 냈던 책을 재개정한 ‘다시쓰는 술탄과 황제’도 조용히 이름을 알렸습니다. ‘정치인들이 쓴 책은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깬 이 책은 전직 국회의장이 썼다는 것을 대놓고 알리지 않았음에도 2012년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38쇄를 찍었습니다. 개정한 책 역시 호평을 받으며 두달 남짓 기간동안 9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최순실 관련 첫 보도가 전해진 지난해 10월 24일부터 열흘동안 이전 열흘보다 무려 76배나 더 팔렸다는 후문입니다. 출판사 측은 10월 마지막 주에만 2만부를 새로 발행하는 등 총 판매량이 10만 부를 넘어섰다고 전했는데요.

이 책은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이 300여권을 직접 구입해 여야 모든 국회의원과 국회 간부들에게 선물하면서 깜짝 이슈가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김 전 의장도 12월26일 국회를 방문해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에게 이웃 돕기 성금 1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현역 시절 여와 야로 정치적 입장이 갈렸던 두 전·현직 국회의장이 서로 책을 사 주고 또 그 책 인세를 기부한 사례는 다시 없는 훈훈한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 ‘국회의원 사용법’도 베스트셀러로 이슈몰이를 했다는 평가를 들었는데요. 정 전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 책”이라고 소개하며 국회의원들을 꼼짝 못하게 할 약점과 숨겨진 ‘비밀’들을 속속들이 이 책에서 공개했습니다. 할 말은 하는 성격 탓에 ‘당대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유권자 노릇을 잘 하기 위해 비판자의 자격을 갖추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최순실 사태의 시작을 알린 연설문 유출 파문이 보도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8년간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한 강원국 씨가 두 대통령에게 배운 글쓰기 비법을 40가지로 정리한 책 ’대통령의 글쓰기’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통령의 부재와 국가 비상상황속에서 3년 전 이미 출간했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어떻게 살것인가’와 2011년 출간한 ‘국가란 무엇인가’도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7년은 대선이 있는 해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치인들의 책이 불티나게 출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춥디 추운 연말 논란을 일으키거나 돈벌이를 위한 책이 아닌 국민들의 알권리와 정치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책들이 새해엔 많이 나와 보다 올바른 국가지도자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끝) /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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