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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했던 '최순실게이트'의 시그널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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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2014년 7월께 개최된 국회 운영위원회.‘최순실게이트’ 국정농단을 암시하는 증언이 툭 뛰어 나왔다.최순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44개 파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을 것이란 ‘시그널’이었을 수도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운영위 회의에 출석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박 의원은 이 비서관을 일으켜 세운후 “목격자 제보가 있었다"며 “밤마다 서류 보따리를 싸들고 어디를 외출하느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이 비서관은 재차 추궁을 받자 “청와대에서 집으로 갈 때 제가 하다 만 그런 서류라든지 또 집에 가서 보기 위한 자료들을 가지고 가는 수가 있다"고 털어놨다.

박 의원은 “총무비서관이 청와대 서류를 함부로 밖으로, 집으로 가져가냐"며 “대한민국이 뭐가 잘못돼도 굉장히 잘못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다소 ‘뜬금’없었던 둘의 대화는 최근 ‘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면서 핵심 정황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최순실 소유로 추정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통령의 연설문 초고를 비롯해 국정현안에 대한 자료가 저장돼 있어 엄청남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이 비서관의 증언은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의 원고를 직접 수정하고, 외교 안보분야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코치’를 해왔다는 세간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야권은 증거가 남을 수 있는 온라인 전송외에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청와대 문건이 무더기로 흘러나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유라는 2014년 9월 20일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승마단체전에 금메달을 수상했다. 체육계에서는 정윤회가 딸 정유라를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승마협회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정유라는 2014년 9월께 이화여대 수시전형의 체육특기자로 합격증을 받아들었다.이대의 수집모집 요강은 ‘원서접수 마감일 기준 최근 3년이내 국제대회나 전국 규모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 입상자'로 지원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정유라는 원수접수 마감일(9월16일) 4일 후인 20일에 금메달을 땄다. 종목이 단체전이어서 자격미달이지만 이대 서류전형을 무난히 통과했다.

이대는 체육특기생에 승마도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이대는 또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한 정유라를 위해 ‘원포인트'학칙을 변경해 소급적용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한 것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최순실은 2016년에는 제적위기에 처한 딸을 구명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 지도교수를 교체하기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독일 승마연수를 핑계로 같은과 학우들이 얼굴한번 보지 못한 정유라가 이런저런 과제물 제출을 포함해 학점을 이수하고 2년째 학생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최순실의 ‘파워’를 빼곤 설명이 안된다. 최경희 총장은 정유라에 대한 특혜 의혹 등 책임을 지고 2016년 10월 사임했다. 130년 이대 개교사상 초유의 총장 불명예 퇴진이다.

2014년 12월엔 최순실의 전 남편이자 박 대통령 의원시절 보좌관이었던 정윤회의 ‘십상시 논란’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다. 정윤회가 강남 모처에서 소위 ‘십상시'참모진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청와대발(發) 문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문서는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이었던 조응천 더민주 의원의 지시로 파견근무중인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 문서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고 보고되기도 했다. 이 사건 후유증으로 조 비서관은 사임하고 박 경정은 문서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경정이 당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언론을 향해 한 발언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그는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2위는 정윤회,3위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일개 경정이 세상을 향해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하지만 일부 언론만 가십성 기사로 다뤘을 뿐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권3년차인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반환점을 돌자 최순실은 대통령 취임후를 준비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실질적 소유자인 국내외 법인을 잇따라 세우고 ‘자금원’으로 삼을 미르재단과 k스포츠 등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문화융성과 체육인재 육성 등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출범시킨 미르재단과 K스포츠가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은 무려 486억원과 289억원에 달했다. 2개 재단이 대통령의 퇴임후를 대비한 보험용인지 단순히 최순실의 사익추구용으로 대통령이 ‘들러리’를 선 것인지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전방위적인 조력없이는 아무리 최순실이라도 775억원이란 돈을 그렇게 단시간에 ’어린애 손목 비틀듯이' 모금할 수는 없는 일이다.(계속) /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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