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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설마"했던 '최순실 게이트'의 시그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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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올초 ‘시그널’이란 TV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다.김혜수 조진웅 이제훈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는 과거의 형사(조진웅)가 미래의 형사 프로파일러(이제훈)에게 무전으로 연쇄살인법 등의 단서를 알려 준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컨셉트로 했다. 현재의 프로파일러에게 전달된 ‘시그널’이 장기미제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돼 추가 범죄를 막고 범인도 검거한다는 시나리오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종합편성채널 드라마가 시청률 12%의 빅히트를 기록한 것은 과거에서 온 시그널이 현재 혹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판타지가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통령 측근중 한명이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해온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면서 대한민국이 아노미상태에 빠졌다. 사회 각계에서 대통령의 탄핵요구가 빗발치는 정권위기는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의 측근 한명이 국정을 좌지우지 해 왔다는 것이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이다. ‘최순실게이트’는 힘떨어진 대통령의 임기말에 불거졌던 예전 역대 정권의 친인척 비리들과 차이가 크다.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최순실’이란 일개 여성이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서 인사 외교 등 국정전반에 깊숙히 개입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국가적 재앙수준인 ‘최순실게이트’를 예방하고 차단시킬 국가적 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온 국민의 느끼는 자괴감의 실체다. 대통령 취임후 정재계 곳곳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경게하는 ‘시그널’이 넘쳐났었는데도 말이다.현재권력의 권위에 압도돼 쉬쉬했거나 ‘찌라시’의혹으로 치부한채 언론과 사정당국이 눈과 귀를 막고 방치해온 탓이다.

‘최순실게이트’란 권력형 비리의 중심엔 그가 애지중지했던 외동딸 정유라가 있다. 최근 밝혀진 대통령 연설문 수정이나 인사 외교분야를 가릴 것 없었던 국정개입은 청와대 구중궁궐속 그들만의 ‘파워게임’으로 정권이 끝나고 난후에야 알려질만한 ‘톱시크릿’에 속한다. 하지만 정유라를 향한 각종 특혜와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편법입학시키기 위한 최순실의 과욕은 곳곳에서 잡음을 낳았고 경고음을 보냈다. ‘최순실 게이트’의 꼬리가 밟힌 것도 어쩌면 정유라에 대한 빗나간 모정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만 20세인 정유라는 2013년 4월께 한국마사회컵 승마대회에 출전했다. 정유라는 경쟁자에게 밀려 개인전 2위의 실망스런 성적을 냈다. 승마대회 우승후 손쉽게 딸의 대학진학을 기대했던 최순실은 격노하면서 주최측에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판정시비로까지 번졌다. 그 해 5월 청와대는 문화체육부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에게 승마대회 부정판정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란 특별지시를 내렸다. 당시 체육계에선 일개 승마대회 판정시비를 관할 경찰이 아니라 청와대 지시로 문체부 고위 관료가 나선 배경 등이 입길에 올랐다. 쉽게 묻힐수도 있었던 진상조사는 문체부 담당 국장과 과장이 전격 경질되면서 단순 루머가 청와대가 개입한 중차대한 사건으로 비화됐다.

노 국장 등이 진상조사 끝에 “시비가 붙은 양측 다 문제가 있다"는 대통령 의중을 거스른 결론을 낸 것이 발단이 됐다.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노 국장과 진 과장을 지목하며 “아주 나쁜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사실상 경질을 지시했다. 대통령이 장·차관이 아닌 실무 국장과 과장 인사를 지시하는 것은 역대 정권을 통틀어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노국장과 진 과장은 그 해 9월 전격 경질조치됐다.문체부에서는 “역린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유 전 장관도 퇴임후 기자회견등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지시를 시인했다.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나쁜 사람'으로 주입시킨 장본인이 누구였는지 이젠 모르는 이가 없다.(계속) /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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