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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전직 외교관의 회고록이 던질 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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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현 북한대학원대 총장)의 회고록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빙하는 움직인다'는 회고록중 UN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정부가 기권을 결정한 ‘10년전 대북외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치권 정쟁소재로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엔 초대형 호재다. 고구마 줄기처럼 파면 팔수록 나오는 ‘최순실게이트'를 희석시키고, 참여정부 비서실장으로 깊숙히 관여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7년 12월 20일 북한인권결의안의 UN표결에 앞서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찬반토론을 했던 당사자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면 송 전 장관과 문 전 대표(당시 비서실장),이재정 전 통일부장관,김만복 전 국정원장,백종천 전 안보실장 등 5명이다. 송 전 장관외 4명은 기권결정을 북측과 상의했다는데 펄쩍 뛴다.북측과 사전교감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최종 결정시점을 놓고도 증언은 엇갈린다.

문 전대표 등 4명은 “북측에 사후통보했을 뿐 의견을 구할 사안도 아니다"고 일축하고 있다. 1(송 전 장관)대 4의 숫적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실게임'은 한쪽 우세를 점치기 힘들다.

문 대표 등 4명이 당시 정무적 판단에 근거한 단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면 송 전 장관은 ’팩트(기록)’를 앞세우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 방침이 기권으로 정해졌던 당시 정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5인의 발언과 언쟁, 중간중간 대통령 일정까지 세세하게 적시했다.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송 전 장관의 꼼꼼한 메모 습관및 기록보관 등이 양측 증언의 ‘디테일'차이를 낳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송 전 장관은 결의안 최종결정 시점에 논란이 일자 기자들에게 “기록이 있다"고 했다. 또 기밀누설및 허위사실 공포 등 법적 책임도 지겠다고 공언했다. 회고록을 뒷받침할 기록물 등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암시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중 9페이지에 걸쳐 결의안이 정식 안건으로 올라온 2007년 11월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부터 20일 유엔표결 기권결정까지 상황을 꼼꼼하게 증언하고 있다. 소소한 것까지 모든 것을 전문형태로 보고하고 기록으로 남기는게 외교관의 몸에 밴 습관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이 결의안 기권 분위기를 몰고갔다. 16일께 안보조정회의에서 송 전 장관의 반대로 결론은 유보됐다.(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은 이날 결론이 났다고 주장한다) 11월 16일은 노 전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영일 북한 총리를 회동한 날이기도 하다. 송 전 장관은 대통령이 북측과 회동후 결의안 찬성에 더욱 부담을 느낀 것을 감지하고 A4용지 4장 분량의 친필 호소문을 전달했다고 한다.송 전 장관의 완강한 반대를 접한 대통령은 일요일이었던 11월 18일 비서실장 주재로 회의 재소집을 지시했다.(이 전 통일부장관 등은 이미 결론은 났고 이날 회의는 송 전 장관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채널을 통해 의견을 확인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는게 송 전 장관의 전언이다.11월 19일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던 송 전 장관은 그 다음날인 20일 대통령 숙소에 불려가 백 안보실장이 들고 있던 북측 ‘쪽지’를 건네받아 눈으로 확인했다.쪽지엔 “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란 북측 경고가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때 기권방침이 최종 결정됐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다.노 전 대통령은 실망한 송 전 장관에게 “찬성한후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한다. 송 전장관이 곧바로 “국제사회에서 체면도 살고 북한 입지도 배려해주는 고육지책이 맞습니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하면서 침실로 향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측 의견을 물었다"는 송 전 장관의 증언이 맞다.하지만, 고인이 된 대통령의 발언을 확인할 길은 없다.설령 그런 발언을 했더라도 끝까지 결의안 찬성을 주장했던 송 전 장관을 위로하는 차원의 ‘립서비스’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회고록과 문 전 대표 등 4명 당사자의 증언은 해빙무드였던 당시 남국관계에서 ‘기권'을 선택했던 대통령의 고민 부분에서는 일치한다.하지만, 북측에 기권을 통보한 것인지, 결정에 앞서 의견을 구한 것인지의 진실규명은 앞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최정 결정 시점도 마찬가지다. 송 전 장관이나 문 전 대표측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록'이 공개돼도 상황은 바뀔 것 같지가 않다.

‘회고록 파동'이 잦아들기는 커녕 과거 ‘NLL(북방한계선) 파문’처럼 향후 대통령선거전의 정쟁 소재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끝) /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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