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엔 초대형 호재다. 고구마 줄기처럼 파면 팔수록 나오는 ‘최순실게이트'를 희석시키고, 참여정부 비서실장으로 깊숙히 관여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7년 12월 20일 북한인권결의안의 UN표결에 앞서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찬반토론을 했던 당사자는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면 송 전 장관과 문 전 대표(당시 비서실장),이재정 전 통일부장관,김만복 전 국정원장,백종천 전 안보실장 등 5명이다. 송 전 장관외 4명은 기권결정을 북측과 상의했다는데 펄쩍 뛴다.북측과 사전교감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최종 결정시점을 놓고도 증언은 엇갈린다.
문 전대표 등 4명은 “북측에 사후통보했을 뿐 의견을 구할 사안도 아니다"고 일축하고 있다. 1(송 전 장관)대 4의 숫적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실게임'은 한쪽 우세를 점치기 힘들다.
문 대표 등 4명이 당시 정무적 판단에 근거한 단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면 송 전 장관은 ’팩트(기록)’를 앞세우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 방침이 기권으로 정해졌던 당시 정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5인의 발언과 언쟁, 중간중간 대통령 일정까지 세세하게 적시했다.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송 전 장관의 꼼꼼한 메모 습관및 기록보관 등이 양측 증언의 ‘디테일'차이를 낳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송 전 장관은 결의안 최종결정 시점에 논란이 일자 기자들에게 “기록이 있다"고 했다. 또 기밀누설및 허위사실 공포 등 법적 책임도 지겠다고 공언했다. 회고록을 뒷받침할 기록물 등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암시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중 9페이지에 걸쳐 결의안이 정식 안건으로 올라온 2007년 11월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부터 20일 유엔표결 기권결정까지 상황을 꼼꼼하게 증언하고 있다. 소소한 것까지 모든 것을 전문형태로 보고하고 기록으로 남기는게 외교관의 몸에 밴 습관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이 결의안 기권 분위기를 몰고갔다. 16일께 안보조정회의에서 송 전 장관의 반대로 결론은 유보됐다.(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은 이날 결론이 났다고 주장한다) 11월 16일은 노 전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영일 북한 총리를 회동한 날이기도 하다. 송 전 장관은 대통령이 북측과 회동후 결의안 찬성에 더욱 부담을 느낀 것을 감지하고 A4용지 4장 분량의 친필 호소문을 전달했다고 한다.송 전 장관의 완강한 반대를 접한 대통령은 일요일이었던 11월 18일 비서실장 주재로 회의 재소집을 지시했다.(이 전 통일부장관 등은 이미 결론은 났고 이날 회의는 송 전 장관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채널을 통해 의견을 확인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는게 송 전 장관의 전언이다.11월 19일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던 송 전 장관은 그 다음날인 20일 대통령 숙소에 불려가 백 안보실장이 들고 있던 북측 ‘쪽지’를 건네받아 눈으로 확인했다.쪽지엔 “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란 북측 경고가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때 기권방침이 최종 결정됐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다.노 전 대통령은 실망한 송 전 장관에게 “찬성한후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한다. 송 전장관이 곧바로 “국제사회에서 체면도 살고 북한 입지도 배려해주는 고육지책이 맞습니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하면서 침실로 향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측 의견을 물었다"는 송 전 장관의 증언이 맞다.하지만, 고인이 된 대통령의 발언을 확인할 길은 없다.설령 그런 발언을 했더라도 끝까지 결의안 찬성을 주장했던 송 전 장관을 위로하는 차원의 ‘립서비스’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회고록과 문 전 대표 등 4명 당사자의 증언은 해빙무드였던 당시 남국관계에서 ‘기권'을 선택했던 대통령의 고민 부분에서는 일치한다.하지만, 북측에 기권을 통보한 것인지, 결정에 앞서 의견을 구한 것인지의 진실규명은 앞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최정 결정 시점도 마찬가지다. 송 전 장관이나 문 전 대표측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록'이 공개돼도 상황은 바뀔 것 같지가 않다.
‘회고록 파동'이 잦아들기는 커녕 과거 ‘NLL(북방한계선) 파문’처럼 향후 대통령선거전의 정쟁 소재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끝) /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