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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자리까지 내건 은행권 '금고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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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말 그대로 ‘쩐(錢)의 전쟁’입니다. 은행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고 쟁탈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금고는 돈이나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 등으로 특수 제작한 상자를 말하지만, 은행권에서 노리고 있는 금고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관리하는 금융회사를 뜻한답니다. 시금고, 군금고, 도금고 등이죠.

올 하반기 들어 전국 곳곳에서 이런 금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남도는 지난달 말에 도금고 지정 관련 공고를 냈습니다. 도금고로 지정되면 수천억원대 예치금을 관리하게 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도금고 지정 금융회사는 명실상부한 지역 내 ‘1위 은행’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됩니다. 단순히 수익성이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실제 은행들은 시금고나 군금고, 도금고 등을 차지하기 위해 만만치 않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각종 지역 행사나 장학금 사업 등 지역 공헌 활동을 위해 인력 동원이나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난달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으로 인해 앞으로 활동 모습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경남도의 도금고 유치에는 농협은행과 경남은행 등이 뛰어든 상황입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네요. 그동안 도금고를 맡아온 농협은행은 경남은행을 포함한 다른 시중은행들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도금고 유치를 원하는 은행들이 제안서를 제출하면 행정부지사, 도의원, 교수,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으로 구성된 금고지정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구조랍니다. 주로 금융회사의 신용도와 안정적인 재무구조, 지역인들의 금융 편의성, 금고 업무 관리 능력, 기관에 대한 예금·대출 금리 등을 살펴보게 됩니다. 당연히 지역 기여도도 감안하게 되고요.

사실 금고 시장의 강자는 단연 농협은행입니다. 농민과 농업을 위한 은행인 만큼 시중은행들에 비해 지역 사회에서 입지가 탄탄한 덕분입니다. ‘금고 시장의 강자’라는 수식어는 농협은행에 영업 경쟁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농협금융그룹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맡고 있는 금고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도 하네요. 지역본부장이 그 지역 금고를 빼앗기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인식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농협은행의 금고 수성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금고 지정과 운영 규칙을 개정하면서 진입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거든요. 실제 농협은행은 광주시교육청 금고 지정을 놓고서는 광주은행과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금고 규모만 1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20조원 규모의 금고를 갖고 있는 경기도 역시 금고 지정 금융회사를 새로 선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 농협은행과 신한은행 자리를 국민은행을 비롯한 다른 시중은행이 넘보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연말 은행권 금고 쟁탈전이 절대 강자 농협은행의 승리로 끝날지, 새로운 신흥 강자의 부상으로 마무리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끝)/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