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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속의 경제史

(性속의 경제史) '포르노~기예여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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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담·성풍속연구가) 창녀들도 품격이 가지가지다. 일정한 교육과 소양을 닦은 여인들이있는가 하면 그저 몸덩어리 하나를 밑천으로 품을 파는 여인들도있다.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간에는 철저한 계서제를 이루고 있었다.



최상층의 여인들은 물론 왕의 애인이나 후궁으로 살아갔다. 이 범주에는 귀족의 상대역을 하거나 종교가 타락했던 때는 고위 성직자들의 버젓한 애인 노릇을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먹고 살았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황진이같은 품격 있는 기녀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없는 들병이로서 여행객이나 행락객을 상대로 길거리를 헤매다 나이가 들면 이제는 거지로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최하층에 속한 여인들도 있었다. 



계급을 스스로 이동시켜 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춘향이는 기생의 딸로 태어났지만 양반의 자제와 혼인을 통한 신분 상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어떻든 최상층의 기녀들은 온갖 기예와 예술적, 때로는 학문적 능력으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역시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고대 그리스의 창녀들도 마찬가지였고 이는 조선의 기생들이나 일본의 게이샤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미모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만일 미모에다 약간의 지적 능력이라도 겸비한다면 이는남성들의 과장된 너스레에 의해 졸지에 대단한 여인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포르노라고 하면 음란화를 말하는 것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말이 하급 창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포르노그래피라고 하면 이는 창녀들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이 되고 이는 각종의 음화들로 곧바로 연결되었다.

이들 포르노의 위 계층으로 헤타이라들이 있었고 이 위에 별도의 명칭들을 지니고 있었던 각종 기예여인들이 있었다. 기예여인들은 모두가 음악 또는 댄서로서 일정한 훈육을 받고 이로써 생계를 유지했다.

 상인들을 위한 연회가 열리면 이 기예의 여인들이 연회장의 흥을 돋우었고 남성들은 이로써 흥분된 감정으로 여인들을 샀다.

기록에 의하면 흥분한 남성들 중 무대로 뛰어나와 현장에서 여인을 강간한 사례까지 있었다는 것이니 여인들이 갖춘 춤솜씨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포르노이들은 유곽이라고 부를만한 집단 거주지에 봉쇄된 채 남성을 위한 성의 노리개로 살아갔다. 에게해의 태양을 받으며 길거리를 거닐던 가창들이 이들보다는 한 단계 위였다고하니 유곽에 갇혀살던 여인들의 한맺힌 고달픔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것이다.

 공창이 차라리 좋은 것은 항상 여기서는 질서가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입법자 솔론은 그리스에 세금제도를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세금은 창가들에서도 철저히 징수되었다.

아마도 그는 세금 수입을 위해 공창을 설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대신 창가를 순회하는 사찰을 두고 조세 포탈범을 단속하는 외에도 행패를 부리는 술취한 고객도 단속하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