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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수장 캐릭터가 협치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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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이정현(새누리당 대표)과 추미애(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보수와 진보 양진영의 카운터파트너로 만났다. 양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촉발된 계파간 힘겨루기는 ‘여당 사상 첫 호남 대표'.’야당 사상 첫 영남대표’를 잉태시켰다.얼떨결에 탈지역주의 ‘꼬리표'를 단 둘이 당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지,계파분열을 촉발시킬지는 두고 볼일이다.

둘은 1958년생 개띠로 동갑이다. 각자 당의 취약지인 호남과 영남을 발판삼아 수 많은 정치적 시련을 겪고 당권을 거머쥔 ’성공스토리'까지 닯았다.둘의 20여년 정치이력에서 찾을 수 있는 교집합은 ‘딱' 거기까지다. 정치스타일과 캐릭터는 천양지차다.정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마님과 마당쇠'의 조합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추미애는 여성 최초의 지역구 5선(서울 광진을)의원이다. 비례대표와 재보궐선거를 통해 3선(전남 순천)고지에 오른 이 대표와는 속된말로 ‘체급'에서 차이가 난다. 추미애는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춘천지법 판사로 재직했던 1995년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추다르크' ‘돼지엄마'등 별명을 얻으면서 김대중 노무현 두 명의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뒤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참여하면서 17대 총선에 낙선하는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추미애는 ‘정치 엘리트’코스를 차근 차근 밟아왔다.

당내 5선의 첫 지역구 여성의원이란 희소성으로 잠재적 대선주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2007년 대선출마에 도전했고,2011년에는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출마했었다. 이에 반해 광주 살레시오고와 동국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한 이정현은 밑바닥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흙수저‘정치인이다.여당 불모지인 호남에 ‘여당 깃발’을 꽂은 집념과 ‘의리의 화신’에 비유되곤 한다.그가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후 이명박후보 캠프의 영입요청을 거절하고 ‘의원 박근혜’곁을 끝까지 지켰고, 이후에도 대통령의 ‘복심‘으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돌쇠캐릭터'를 고수해왔다.

판사출신인 추미애는 ‘원칙]과 소신'을 최고 정치덕목으로 꼽는다.당직생활로 잔뼈가 굵은 이정현은 ‘의리'가 정치적 자산이고 브랜드이다. 그가 입만 열면 “재집권보다 박근혜대통령의 성공이 우선”이라고 한다.정치적 지향점에서 둘의 차이는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서 극한 충돌을 빚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마님'과 ’마당쇠'로 비유되는 둘의 정치스타일과 캐릭터가 협치와 대치중 어느쪽으로 향할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19대 국회이후 여야 대표중 최악의 궁합으로 꼽히는 이는 황우여(새누리당 전 대표)와 김한길이다.당시 여야는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세월참사 등 현안을 놓고 한치 양보없이 대치했다. 야당의 110여일 장외투쟁으로 국회 회기의 대부분이 개점휴업상태였다. 민감한 정치현안과 함께 굴찍한 선거(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가 겹쳐진 상황탓이 크지만 황우여와 김한길의 극명한 정치스타일과 캐릭터차이도 정치실종을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로 인한 양측의 앙금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황우여와 김한길의 정치스타일과 캐릭터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국회의장직 도전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쳤던 황우여는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지지가 절실했던만큼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았다. 여야 협상테이블에서 황우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람좋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친노(친노무현계)’계 틈바구니에서 입지가 좁아진 김한길은 이런 상황에 절망하곤 했다. 김한길은 사석에서 “정색할 만한 상황에서 실실 웃는 황우여를 보고 있으면 환장하겠다"고 토로하곤 했다. 황우여도 사석에서 “현충원참배 등 여야 대표가 그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한길은 항상 독자행보를 했다"며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여야를 통털어 ‘궁합’이 잘 맞는 파느너로 꼽히는 이는 문희상(새정치민주연합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황우여도 문희상을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문희상은 2014년 9월 5개월남짓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서도 김무성(새누리당 전 대표)과 환상적 궁합을 보였다.문희상과 김무성은 세월호특별법 타결,12년만에 새해예산안 법정시한내 처리,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을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내면서 19대 국회중 생산성측면에서 최고였단 평가를 받고 있다.추상같이 당내 기강을 잡는 외강내유(外剛內柔)의 리더십과 함께 상대를 인정하면서 ’기브앤 테이크(give & take)'란 의회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문희상의 정치스타일이 빛을 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끝) /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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