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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오브카드 원작자가 전해주는 정치연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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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국제부 기자) 마이클 존 돕스 경(Lord Dobbs)을 아시나요? 영국의 진보적 일간지 가디언이 ‘아이 얼굴을 한 웨스트민스터(영국 정치계)의 암살자’로 평가한 인물입니다. 별명만 들어도 ‘음모술수’의 달인으로 느껴집니다. 잘 모르시겠다구요. 돕스의 또 다른 타이틀은 TV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원작자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정치권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참고로 하우스 오브 카드는 1990년 영국 BBC방송이 먼저 TV 드라마(4부작)로 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아카데미(BAFTA)에서 14개 부문에서 후보로 선정됐고 2개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케빈 스페이시의 열연이 돋보인 미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전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회사인 미국 넷플릭스가 만든 작품입니다. 내년 3월에 시즌5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돕스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국 보수당의 대중연설문을 작성했고, 1981년부터 5년간은 마거릿 대처 정부의 특별고문으로 일했습니다. 막후 정치에 뛰어난 인물로 자주 묘사되죠. 보수당의 주요 직책을 섭렵했으며 지금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20여권의 소설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돕스의 경험과 정치역정은 하우스 오브 카드에 고스란히 담겨있죠.

사설이 길었습니다. 돕스가 전해주는 정치연설문 작성법을 이야기하려다 여기까지 왔네요.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설득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돕스의 연설문 작성 노하우를 소개했습니다. 돕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4의 DVD 판매 등 마케팅을 위해 연설문 작성에 관한 특강을 열었다면서 말입니다.

강의에서 돕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설문을 쓸 때는 두 종류의 청중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청중은 연설문의 문장 하나하나를 따지면서 정치적 암시를 찾아내려고 한다. 다른 청중들은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연설이 위대한 성공을 거두려면 내용도 좋고 동시에 사람들의 감성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는 실패한다.” 이성과 감성을 함께 공략해야한다는 말이네요.

그는 연설문의 마지막을 먼저 쓰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연설에서 마무리는 주춧돌과 같다. 연설문을 쓰기 전에 어떻게 끝내야 할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위대한 연설은 청중을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B라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다면 방법은 의미가 없다.”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상당수 정치인들은 한 명의 연설대필가와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춥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특별보좌관 페기 누난의 글을 사용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테드 소렌슨과 오래 작업을 했습니다. 존 파브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수석 스피치라이터로 유명합니다. 돕슨는 “자신이 주력으로 연설을 써주는 정치인 이외의 인물에게 연설을 써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인물에 대해 극도로 잘 알지 못하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영국 최고의 연설문 작가로는 로널드 밀러를 꼽았습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연설문을 작성한 인물입니다. 대처 총리의 대표적 연설로 꼽히는 ‘The lady’s not for turning(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도 밀러의 작품입니다. 연설이 이뤄진 때는 복지를 줄이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대처 총리의 강력한 경제정책에 여당인 보수당조차 반감을 가질 정도로 ‘유턴(U-TURN)’에 대한 요구가 높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처 총리는 1980년 10월 브라이튼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경제정책을 고수하겠다며 이렇게 일갈합니다. “유턴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나 돌아서세요(YOU TURN). 여인은 돌아서지 않습니다.”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는 구절은 1948년 발표된 연극 ‘여인은 화형당하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Burning)’에서 착안했습니다. 연극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마녀로 몰려 화형 위기에 처한 여인이 마침내 자유롭게 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대처 총리는 불과 몇 개 문장으로 반대파들에게 ‘강펀치’를 날린 셈입니다.

돕슨은 “대처의 스피치라이터였던 밀러는 대처를 아주 잘 알았고, 깊은 공감과 연민을 갖고 있었기에 명연설을 쓸 수 있었다”며 “나는 절대로 대처와 그런 명작을 빚어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돕슨은 정치인과 연설문 작성자의 강력한 유대관계가 좋은 연설문의 비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처의 명연설은 쉽게 만족을 못하는 성격이 크게 한몫했을 겁니다. 돕슨에 따르면 대처는 연설문에 적어도 다섯 번은 ‘퇴짜’를 놨다고 하네요.

돕슨 이야기를 쓰다보니 문득 하우스 오브 카드를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케빈 케이시가 연기하는 프랭크 언더우드 미국 대통령이 예전과 달리 보일 것 같네요. (끝)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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