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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애환을 담은 테마별 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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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화력발전소...最古의 현대식 빌딩... ...익숙해서 낯설다...골목길 옆 숨쉬는 유산

서울 미래유산은 어렵거나 거창한 문화유산이 아니다. 현재 사용 중인 가옥에서부터 음식점, 이발소, 목욕탕, 골목길, 마을, 시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정감 어린 공간이다.

민족대이동의 중심지인 서울역광장, 1968년 1·21사태 당시 교전의 흔적으로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1·21사태 소나무(서울 성곽길 백악마루~숙정문 사이), 6월 민주항쟁과 붉은악마의 응원 장소인 서울광장이 대표적인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설치된 뒤 지금까지도 하수 및 우수 통로로 이용 중인 하수관거(덕수궁 내)와 실향민에 의해 형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평화시장(중구 장충단로 13길 20) 및 신평화시장(중구 청계천로 298)도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1956년 개업한 뒤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으로 애용된 학림다방(종로구 대학로 119)과 4·19 민주화운동 희생자 199위를 안장한 국립 4·19 민주묘지(강북구 4·19로 8길 17)도 미래유산에 포함된다.

서울시는 2012년 6월 ‘100년 후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 찾기’라는 이름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 예비후보를 찾는 행사를 시작했다. 시민의 발자취가 담긴 문화유산을 통해 서울시를 100년 후 미래세대와 공존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2개월간의 시민공모 끝에 930건이 수집됐다.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의 분과로 구성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는 시민공모로 발굴된 예비후보에 대한 심의를 벌여 미래유산을 선정했다. 서울시는 문화유산 소유자에게 인증서와 표식을 교부했다.

(1) 시민생활

성북동 국시집(성북구 성북동 1가 9)은 1969년 개업해 2대째 이어오고 있는 칼국수 전문식당이다. 당초 분식집이었지만 1968년 우연히 방문한 당시 서울시장이 “칼국수가 맛있다”며 정식 개업을 제안하자 이듬해 성북동 국시집이란 간판을 달았다고 한다. 이곳은 고(故) 김영삼 대통령 등의 단골식당으로 유명하다.



구하산방(종로구 인사동 5길 11)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이다. 1913년 일본인 상인이 개업한 곳이다. 1935년 점원으로 들어갔던 우당 홍기대 선생이 광복 이후 인수했다. 현재 우당의 조카인 홍수희 사장이 운영 중이다. 화선지, 붓, 먹, 벼루, 전각 등 서화재료를 판다.



불광대장간(은평구 통일로 69길 15)은 1963년 문을 연 뒤 같은 곳에서 2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대장간이다. 쇠뭉치를 자르고 두드리며 호미와 괭이, 낫, 쇠스랑, 도끼 등을 만든다. 대장장이 박경원 씨가 아들 박상범 씨와 함께 일하는 곳이다. 건설현장에서 오는 단골손님이 많다. 생산제품마다 불광이란 낙관을 찍을 정도로 품질에 자부심을 갖는 곳이다.

(2) 문화예술



윤극영 가옥(강북구 인수봉로 84길 5)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의 작곡가인 고 윤극영 선생(1903년 출생)이 10년 넘게 살다가 1988년 생을 마감한 곳이다. 서울시는 이 집을 미래유산으로 영구 보존하기 위해 고인의 장남으로부터 매입한 뒤 안전진단과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14년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고인이 작품 활동을 했던 방을 그대로 보존한 생전모
습재현관과 친필 작품을 볼 수 있는 유품전시관, 지역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동요나 시낭송 교육프로그램도 할 수 있는 다목적실로 구성됐다.

김태길 가옥(종로구 혜화로 12길 86)은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고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가 1975년까지 살았던 한옥이다. 현재 원형을 유지한 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3) 정치역사



삼청각(성북구 대사관로 3)은 1972년 9월 남북 적십자회담 만찬이 열린 곳이다. 6개의 한옥 별채 등으로 구성돼 한국을 찾은 국빈을 접대한 식당으로 명성을 날렸다. 군사정권 시절 여야 정치인의 회담 장소로 이용되면서 ‘요정 정치’의 상징이 됐다. 1999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2000년 서울시가 인수해 문화시설로 지정했다. 현재 주로 한식당으로 운영되면서 전통문화 공연과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일 삼청각을 2018년까지 한식과 한식문화를 소개하고 체험하는 랜드마크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함석헌 기념관(도봉구 도봉로 123길 33-6)은 인권운동가로서 1970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뒤 독재반대투쟁에 나선 고 함석헌 선생의 가옥을 리모델링해 2015년 9월 준공식을 열었다.



(4) 산업노동

구의취수장(광진구 아차산로 710)은 1976년 건립돼 서울 시민에게 수돗물을 제공하기 위한 원수처리장으로 기능해왔다. 2011년 인근 강북취수장 신설로 제1취수장의 운영이 중단되면서 산업시설로서의 임무가 한계에 부딪혔다.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4월 건물 5개동에다 연면적 5002㎡ 규모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로 문을 다시 열었다. 국내 유일의 거리예술과 서커스예술 창작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외 거리예술, 서커스와 관련된 도서, 간행물, 리플릿, DVD 등을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을 갖추고 있다.

서울화력발전소(마포구 망원동)는 1930년 국내 1호 화력발전소로 건설됐다. 일명 당인리발전소로 유명하다. 1930~1950년대 건설된 1, 2, 3호기는 이미 폐기됐고 1971년 준공된 4호기도 작년 말 운영을 멈췄다. 5호기도 곧 수명을 마치게 된다. 2013년부터 지하에는 서울복합화력발전소 1, 2호기를 설치하고 지상에는 공원과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1조181억원 규모의 사업이 추진 중이다. 2017년 말 완공되면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선유도 공원 등과 함께 문화벨트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5) 도시관리

아르코 예술극장(종로구 대학로8길7)은 1981년 4월1일 ‘공연예술 진흥과 공연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전문 공간 확보, 재정적으로 어려운 순수예술단체들에 발표공간을 제공하는 간접지원시설 조성’이란 취지에 따라 문예회관 극장으로 개관했다. 고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으로 대학로의 공연문화를 선도하는 다목적 무대예술 공연장이다. 혜화동 주민센터(종로구 혜화로 12)는 국내 최초 한옥 형태의 동사무소다. 혜화동 주민센터는 도쿄여자의과대학 출신으로 걸스카우트의 전신인 대한소녀단을 창설한 여의사인 한소제 선생이 1940년대에 지은 한옥이다. 한 선생이 거주하다 196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2005년 말 종로구청이 사들여 혜화동 주민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만 현대식 사무공간으로 바꾸었다. 직원들도 한 달에 한 번은 한복을 입고 근무하면서 혜화동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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