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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신흥국 디폴트, 이번엔 왜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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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국제부 기자) 지금처럼 80년대에도 국제유가가 3분의 1 토막난 일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무려 28개국이 디폴트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원자재 가격이 추락을 거듭한 지난 2년간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은 잘 버텨냈습니다. 브라질, 러시아 같이 큰 나라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소국들도 디폴트를 선언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포드이코노믹스를 인용해 “지난 2년간의 원자재 가격 하락이 1980년대처럼 ‘디폴트 파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26개 주요 원자재 수출국 가운데 디폴트를 선언한 나라는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나라는 가나, 르완다 두 나라 뿐이었습니다.

80년대와 달리 원자재 기반 신흥국들이 잘 버텨낸 이유는 뭘까요.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부채조달 절벽”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엔 미국의 채권 금리가 최고 15%에 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달러 표시 부채가 급증했고,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재정이 부실화된 신흥국들이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제로금리 시대에 들어선 터라 차입비용도 적고, 부채가 그때처럼 불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두번째로, 원자재 신흥국들이 더 이상 달러로 자금을 빌리지 않고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달러 대비 통화 가치가 급락하더라도 부채 상환 부담이 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자재 신흥국들이 일시적으로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일부러 디폴트를 선언하는 경우도 줄어들었습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디폴트를 선언하는 이유는 부채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부채조달 절벽’이 없다는 점은 상당히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1980년대보다 낮은 세계 경제성장률 때문에 더욱 길고,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저성장·저금리가 양날의 검이 된 셈입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이라크, 몽골, 앙골라 등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균형재정을 맞추기 위해 경제구조 개혁이 필요한 국가는 과거 디폴트를 선언했던 26개국 중 9개국이라고 말합니다. 이들 9개국은 모두 전체 수출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소 75%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는 높은 공공부채, 무역수지 적자, 외환보유액 고갈 등 합병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나라들도 개발자금을 마련하고 인프라에 투자하는 동시에 재정을 개혁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습니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1배럴당 27달러 수준에서 45달러 수준까지 오르는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26개국의 재정 상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원자재 가격의 반등이 “단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만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 나라들이 어떻게 해법을 찾아나갈지 궁금해집니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경제 구조에 대한 수술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끝) /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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