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대구 수성갑)가 6일 길거리에 멍석을 깔고 지역구민에게 ‘백배사죄’를 올렸습니다. 무엇이 오만했고 무엇을 잘못했길래 회초리를 자청한 것일까요.
김 후보는 이날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구 시민들이 새누리당을 사랑해줬는데, 감사와 보답을 하기는커녕 큰 상처를 줬다. 이번 공천에서 새누리당의 모습은 분명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반성했습니다. “오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중진 정치인으로서 ‘이러면 안된다. 국민들께 예의가 아니다’면서도 미처 할 말을 못한채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며 “오만에 빠져 국민들에게 상처를 줬다. 종아리를 걷어 회초리를 맞고 뼈에 새긴 반성으로 대구 시민을 더 뜨겁게 모시겠다. 매섭게 질책해 달라”는 호소도 이어졌습니다. 이번 공천에서 보여준 당의 오만함을 사죄하겠다는 이야깁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천을 주도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후보에게 수성갑 지역구를 물려준 ‘선임’입니다.
김 후보의 백배사죄에 이어 최경환 대구·경북권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대구 후보 11명도 모두 모여 무릎 꿇고 다시 한 번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새누리당이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또다시 읍소·사죄에 나선 것은 텃밭지역에서 불고 있는 역풍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여권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던 영남권에서 유승민·주호영·류성걸 의원 등이 주도하고 있는 무소속 돌풍이 심상치 않은데다 수성갑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김문수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텃밭 지역에 ‘진박(眞朴)’후보를 내리꽂았다가 ‘옥새투쟁’까지 치렀던 이 공관위원장의 노골적인 계파공천,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관위의 고사 작전 등이 역풍을 불러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새누리당의 ‘읍소 전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를 두달여 앞두고 터진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여당에 초대형 악재가 됐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무성 현 대표는 최대 격전지였던 부산에서 손글씨로 “도와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무성”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습니다. 윤상현 당시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세연·민현주·함진규 의원 등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도와주십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습니다. 그결과 새누리당은 패색이 완연했던 지방선거를 승리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4·29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성완종 리스트’라는 대형 악재를 맞았습니다.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를 비롯해 홍준표 경남지사, 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과 유력 인사들이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 거액을 받았다는 리스트가 공개되자 여권은 또다시 비상상태가 됐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카드는 이번에도 ‘읍소’였습니다. 그는 성완종 사태에 대해 사죄하면서 “우리 정치권 정화의 계기로 삼겠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새누리당 출당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읍소카드의 효과였을까요. 4·29 재보선은 성완종리스트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김 후보의 백배사죄, 대구 후보들의 반성이 지역에서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리한 판세를 뒤집으며 새누리당의 ‘읍소 전략 불패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한 여권 관계자는 “공천 파문이 한창일 때는 내내 침묵하다가 이제야 반성한다는 말이 얼마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끝)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