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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속의 경제史) 성과 패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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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이 폭발하는 20세기
성의 향유, 수평적 확산으로 대중화 … 여성, 복장·직업의 자유 얻어

(정화담·성풍속연구가) 20세기는 패션의 역사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시대다. 지난 세기말에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소위 좋았던 시절(벨 이포크)에는 여성복에 있어서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이후의 각종 패션은 모두 이 시기에 단초를 열었고 이 시대의 기본틀을 크게 벗어나지않고 있다.

여성의 가슴과 허리 복부를 옥죄었던 코르셋이 없어진 것도 이 시기였다. 경제는 뻗어나가고 선진국들에서는 축적되는 자본으로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 처지에서 이 시기를 결코 벨 이포크라 할수는 없다. 이 시기는 우리로서는 치욕의 시간들이었고 모멸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패션에 있어서도 여인들은 겨우 가슴을 가릴 정도였을 뿐 5백년간 변함 없는 복장을 유지해왔다. 그 다양성이나 실용성이라는 것은 전통이라는 이름 밑에 철저히 가리워진 상태였다. 어차피 서양의 복장을 중심으로 말해왔던 터이니 벨 이포크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로 20세기를 성이 폭발하는 시대처럼 인식하게 된 것은 대중화 때문일 것이다. 심도에 있어서는 결코 절대주의 왕조 시절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었지만 대중성이나 수평적인 확산에 있어서는 20세기를 능가하는 시대는 없다. 이제는 누구나 어디서든 성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성의 가장 치열한 표현물인 패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성복이라는 것은 20세기의 산물이다. 이제 살롱의 시대는 가고 공장의 시대가 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패션 상품들은 모두 이 때에 탄생하고 하나씩은 자기의 스타일을 유행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는 그런 상표들이다.

20세기 문명을 확실하게 구획지은 하나의 말을 고르라면 단연 매스 프로덕션(대량생산)이라는 말을 꼽을 수 있을 게다.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고 주택이 대량 생산되고 패션이 대량 생산됐다. 사실 모든 것이 대량 생산됐다. 식민지 개척은 식민국 식민들의 자존심을 최고조로 높여 세계의 패션으로 시야를 넓혔다. 세계가 하나가 되고 패션도 하나가 됐다. 일본의 기모노 스타일이 난데 없이 유럽에서 유행하고 러시아 스타일이 미국의 귀부인들을 즐겁게 했다.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성복은 결정적인 변화를 맞았다.

무릎까지 솟은 샤넬라인은 이후 지금까지 여성 정장의 기본 라인이 되어 있다. 물론 많은 변형들이 있지만 모두 이 기본형에서 10cm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성의 시대가 왔다. 여성은 더이상 무도회에서 길다란 치마를 늘어뜨린채 또는 수십폭 짜리 드레스를 펼치고 앉아 남자들이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복장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여성들은 곧 근로에서의 자유를 얻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성들의 취업이 늘어나고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가 늘어났다. 수영복이 생기고 운동복이 생겼다. 치마는 짧아지고 복장은 활동성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19세기적 시각으로 보면 도대체 시건방지고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래서 여성적인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시대가 왔다.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